국민협의회, 27일 盧정권 경제파탄 규탄대회
광화문사거리서 개최…"일자리 까먹고 있다"
경기침체와 실업률 증가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반핵반김국민협의회가 오는 27일 광화문 사거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경제에 치중할 것을 주문하는 ´노정권 경제파탄 규탄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 15일 국민협의회 주최로 열린 「건국 56주년 국민통합대축제」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사람들´(대표 봉태홍) 회원들이 수도이전 반대와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국민협의회는 행사와 관련해 성명을 내고 "미국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까지도 10년 불황을 탈출하여 호황을 누리고 있는 세상에서 한국 경제만이 노대통령 취임이후 최악의 수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일자리를 한해에 50만개 만들겠다고 공약했던 노대통령은 있던 일자리마저 3만개 까먹었다"고 지적했다.

성명은 또 "노 대통령 취임 이후 2년간 한국경제는 아시아에서 꼴찌를 기고 있다"며 "경제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에 대통령은 역사에 묻힌 유신시대, 일제시대의 유령들을 다시 캐내어 마구잡이로 부관참시하려는 인민재판식 맥카시 선풍을 준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 정권은 국민다수가 반대하고 김정일 정권만 이롭게 할, 50조가 들지 100조원이 들지 아무도 모르는 천도를 강행하면서 이전지의 안보검토도 하지 않았다"며 "이 정권은 또 2000만 명이 사는 수도권의 부동산값을 반으로 떨어뜨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수도권 주민들이 무슨 죄인가, 동네북인가, 왜 망국적 천도에 내 재산을 날려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국민협의회는 "투자와 소비를 안하면 상인, 청년들, 서민층, 노동자들이 먼저 고통받는다"며 현정권에 △일제. 유신의 유령들과 싸우지 말고 경제불황과 싸우라 △경제공황을 몰고 올 천도 계획을 포기하라 △가난을 나누는 좌파정책을 포기하라 고 촉구했다.


다음은 국민협의회의 성명 전문이다.

노정권 ´경제파탄´ 규탄대회가 오는 8월 27일(금) 오후4시 광화문 네거리에서 열립니다.

1. 미국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까지도 10년 불황을 탈출하여 호황을 누리고 있는 세상에서 한국 경제만이 노대통령 취임이후 최악의 수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서민들의 비명을 못들은 체 하면서 대통령은 일제시대. 유신시대의 유령들과 싸우느라고 오늘의 문제를 내팽개치고 내일의 꿈을 깨뜨리고 있습니다.

2. 일자리를 한해에 50만개 만들겠다고 공약했던 노대통령은 있던 일자리마저 3만개 까먹었습니다. 청년실업률이 가장 높고, 일용직 근로자와 저소득층 및 시장상인들과 택시기사들이 가장 큰 경제적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시대착오적인 좌파정책으로써 기업과 부자들을 적대시 하고 친북반미운동을 비호.방치하여 한미동맹이 흔들리니 투자와 소비가 위축되어 못사는 사람들이 더 못살게 된 것입니다.

3. 노대통령 취임 이후 2년간 한국경제는 아시아에서 꼴찌를 기고 있습니다. 경제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에 대통령은 역사에 묻힌 유신시대, 일제시대의 유령들을 다시 캐내어 마구잡이로 부관참시하려는 인민재판식 맥카시 선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정권은 국민다수가 반대하고 김정일 정권만 이롭게 할, 50조가 들지 100조원이 들지 아무도 모르는 천도를 강행하면서 이전지의 안보검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정권은 또 2000만 명이 사는 수도권의 부동산값을 반으로 떨어뜨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수도권 주민들이 무슨 죄인입니까, 동네북입니까, 왜 망국적 천도에 내 재산을 날려야 합니까.

4. 오늘의 문제를 해결할 힘도, 내일의 길을 개척할 용기도 없는 노대통령은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한국사회의 주류층을 반개혁세력으로 몰면서 또 ‘역사바로세우기’ 라는 걸 들고 나와 과거사와 씨름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통령을 믿고 누가 투자하고 누가 돈을 쓰겠습니까. 투자와 소비를 안하면 누가 먼저 고통을 받습니까. 상인, 청년들, 서민층, 노동자들입니다.

5. 노정권은 경제파탄의 책임을 지적하는 사람들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희한한 논리를 만들어 국민과 언론의 비판의 자유마저 제약하려 합니다. 국민들이 먹고사는 것을 도와주어야 할 정부가 먹고 사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참을 수 없습니다. 우리 생활인들이 깨어나 외쳐야 합니다.

“노정권은 일제. 유신의 유령들과 싸우지 말고 경제불황과 싸우라”
“노정권은 경제공황을 몰고 올 천도 계획을 포기하라”
“노정권은 가난을 나누는 좌파정책을 포기하라”


2004년 8월 17일

反 核 反 金 국 민 협 의 회
(운영위원장 : 徐貞甲 국민행동본부 본부장 / 대령연합회 회장)
엄병길 기자 bkeom@independent.co.
[독립신문 http://independent.co.kr 200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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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테네올림픽이 한창인 그리스.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
근대 올림픽의 제1회 개최 '원조집’
유사점이 많아 한반도와 많이 비교된다.
발칸반도 - 한반도, 수많은 섬들 - 다도해
수많은 외침과 강대국사이에서의 점이지대.
그리스인들의 성깔도 한국인과 비슷하다 한다.
화끈하고 감성적이고...

# 이번 8월14일 새벽에 생방송된
아테네 올림픽 개막식은
회사에서 야근을 마치고 내 책상머리에서 잔무를 챙기면서 TV를 보았다.
한마디로 예술적 충격이었다.
인류문명중 가장 파급효과가 큰 그리스 문명의 대서사시였다.

인류는 정기적으로 올림픽, 월드컵, 유니버시아드...
또 지역적으로 묶어서 많은 스포츠 이벤트를 꾸민다.
NBA, 메이저리그, 유로축구, 아시안게임 등...
상업적인 리그에서 순수 국제아마츄어게임까지.

하지만 이번 아테네올림픽 개막식은
인류문명의 뿌리를 다시 새겨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스는 오른쪽에 지중해, 왼쪽에 에게해를 끼고 위치하면서
‘폴리스’라는 도시국가의 이상향으로 역사속에서 더 크게 다가온다.

# 대회 개막식전 전 세계인에게 선보인
그리스의 과거와 인류문명의 변천사는
그야말로 한편의 역사기행 다큐멘터리 동영상이었다.

생생한 색감을 그대로 살린 메이크업과 분장은
고대인들이 방큼 역사책을 찢고 나와 우리 앞에서 말을 거는 듯했다.
관행적인 집단체조나 매스게임 형식을 완전히 탈피했다.
영화 ‘트로이’에서 보았던 서사적 신화분위기가 물씬했고
인간성을 띤 신들이 노닐던 에게해 파란 파도가 메인스타디움에 일렁거렸다.

( 저 종이배 위를 탄 소년을 보라,
88올림픽때 한국의 굴렁쇠소년 버전을 응용해 완전히 한등급 올려버렸다.
저 물들은 나중에 3분만에 다 빠져나가 다시 그라운드로 표변한다.)

첨단 레이져 빔을 수학적으로 계산하여
인류의 생체적 근원 DNA 나선구조까지
환상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을 보고 개막식 내러티브가
역대 어느 대회 수준을 초월하는 새 지평이었다.
( 2008년 저 중국쉐이들 짱깨 올림픽은
뭘로 떡칠할 지 자못 궁금해진다. )

한마디로 미술의 승리였다.
"모스크바올림픽, LA올림픽은 저리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품격이 달랐다.
예술이 이벤트를 만났고 민족적 편협성을 초월했다.

섬면적 다 합해 한반도 사이즈에 남짓한 그리스,
인구 1천만명 남짓. 국민소득은 2만불에 육박한다.
그리스를 다시 보며 한번쯤 우러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개막식의 총감독이 누구였는지 궁금해진다.
시청하고 있는 수십억 인류에게
이렇게 강한 임팩트를 준 그 인물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진다.
인류는 지역에 따라 다 형국이 달랐지만
신과 인간의 대면/대화라는 관계성측면에서
'백인 흑인 황인 모두가 하나'라는
공감을 불러일으킨 그 상상력에 대해 묻고 싶어진 것이다.

지금 네티즌들이 난리다.
플래쉬 컷에 나오는 남북 한반도팀의 유니폼을 보고 말이다.
파랑 빨강 저 원색의 후텁지근한 양복 정장.
맨날 양복 정장만 재활용하냐고
좀 캐주얼하게 자유스러우면 어디가 덧나냐고...

그러고 보니 딴 나라는 다들 개성적인 리버럴 패션 그자체였다.
우리와 유독 중국팀만 패션 전체주의 냄새 그자체였다.

예술은 그냥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생활속에서 의식속에서 대화속에서
예술을, 창조성을 궁구하지 않으면 안나온다.
누가 시킨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하라.
그리고 책임져라.
그리고 만끽히라.
그리고 깨끗이 스러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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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캥거루 실업까지 증가하는 사회
우리 사회의 큰 문제 중의 하나가 청년 실업이다.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데다 좀처럼 개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6월 현재 청년 실업자 수는 전체 실업자의 절반인 38만7,000명으로 청년 실업률은 7.8%에 달했다. 전체 실업률 보다 2.4배 높다.

청년 실업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수요 측면에서는 기업의 일자리 감소와 경력직 선호 등이, 공급 측면에서는고 학력화와 구직 눈높이 상승, 높은 가족 의존성 등이 지적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현상은 소위 ‘캥거루 족’형 청년 실업자가 많다는 점이다.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구하지 않고 부모에 의존해 생활하는 청년이 늘고 있다. 경제활동인구 중 미혼 남자의 취업률을 보면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경우가 68.4%로, 분가해서 독립한 청년층의 취업률 87%보다 20%포인트 정도 낮았다. 전통적인 가족 의존 문화나 부모의 과보호가 빚어낸 결과다.

또 최근 주목되는 현상은 구직자의 고학력화가 두드러진데다 취직 눈 높이조정 에 실패하고 있다. 대학 진학률은 지난 10년간 두 배 이상 증가했지만 이들이 만족할만한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또 대기업이 당장활용할 수 있는 경력직 채용만 늘리고 있다. 이런 이유로 청년층 취업자는1996년 64만여명에서 올들어 40여만 명으로 감소했다. 그런 한편에서 중소기업들은 인력난을 겪고 있다. 장기적인 인력 수급의 불일치가 초래한 실업이다.

이러한 원인들을 보면, 가정의 과보호와 젊은 층의 노동의 중요성에 대한인식부족이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경제의 역동성을 저하시켜 잠재 성장력을 훼손한다. 청년층의 직업에 대한 인식 개선과 함께 단순히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
[한국일보 200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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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결혼해 이민가는 한국 남성들

"한국에선 먹고 살 길 막막" 고민 끝에 중국·러시아·우즈베크 등 찾아 '제2신혼' 꿈
“뼈빠지게 일했는데 나이 마흔줄에 명퇴당했지, 이혼까지 당하니까 죽고싶다는 생각밖에 안들더라고. 그러다가 새출발 해보자 싶어 3년 전에 퇴직금 들고 중국으로 왔어요. 여기서 한족(漢族) 여자와 결혼해 살고 있고 조그맣게 벌인 PC방도 곧잘 되고…, 후회는 없어.”

서울 시내의 잘 나가는 은행원이었던 김도균(47)씨는 현재 중국 지린성에서 중국인 부인과 함께 PC방을 운영하고 있다. 1999년 다니던 은행이 구조조정에 들어가 그는 졸지에 실업자 신세로 전락한 데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이혼까지 당했다. 그 후 수차례의 맞선을 봐온 김씨, 그러나 결과는 모두 실망스러웠다. “여자들은 ‘이 남자가 돈이 있는지 없는지’ 계산하느라 바쁘더라고요. ‘처가에 매달 300만원씩은 보내야 한다’, ‘신혼집은 강남의 아파트’, ‘집은 공동명의’…. 가진 것도 없는 데다 또 다시 결혼에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국제결혼을 알아봤습니다.”
그는 중국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로부터 30대 한족 여성을 소개받았고 몇 주의 연애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그리고 퇴직금을 모아 중국에 30평짜리 아파트 한 채를 사고 PC방 2개를 열었다. “한국에서 1억5000만원으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요? 장사를 해보고 싶어도 권리금이나 임대료가 엄청 비싼 데다 경기가 나쁘니 비전도 없잖아요. 부인이 현지인이니까 도움도 받고, 나도 같은 돈으로 처갓집에 생색내면서 해줄 수 있는 것도 많고…. 서로 좋은 거죠.”
서울 영등포의 A할인매장에서 일하는 신모(34)씨. 시계가 오후 7시를 ‘땡’하고 가리키면 허겁지겁 종각역 근처의 러시아 학원으로 달려간다. 신씨가 매주 3일씩 러시아어를 배우고 밤이면 나이트클럽의 여댄서들로부터 현지 분위기를 익히는 등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금발의 러시아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서다. “나이가 30을 넘어가는데 모아놓은 돈도 없으니까 국내에서 참하고 예쁜 아가씨와 결혼하는 건 포기했어요. 러시아에 가서 결혼도 하고 지금 있는 돈으로 장사도 시작할 계획이에요.” 신씨는 추석 연휴를 이용해 러시아에 들를 생각이다. 국내 국제결혼 알선업체에 쥐어줄 돈 1000만원도 아깝지 않다고 했다.
“경기 나쁘고 비전도 없어”… 중국·러시아에서 ‘제2의 인생’
김씨나 신씨처럼 국제결혼을 통해 ‘제2의 인생’을 꿈꾸는 사람이 늘고 있다. 국내에서 국제결혼이 눈에 띄게 증가한 건 1998년 이후. 그 수는 계속 늘어 지난해엔 한국 남성 1만9214명이 외국인 여성과 결혼했다.(통계청) 2002년의 1만6건에 비하면 62% 증가한 셈이다. 초기에는 주로 농촌 노총각들이 베트남·조선족 여성과 결혼하는 게 전부였지만 지금은 30~40대 회사원이나 전문직 남성들도 러시아·고려인 여성과 국제결혼을 한다는 게 알선업체들의 얘기다. 게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제결혼 후 현지에 정착하는 남성이 늘어나면서 알선업체들은 결혼뿐 아니라 현지 정착 아이템을 함께 끼워 파는 ‘패키지’ 상품도 내놓고 있다. 인천의 A업체의 경우 1500만원짜리 ‘결혼+현지 개업컨설팅’의 패키지 상품을 팔고 있다. 최근 6개월 동안 이 업체를 통해 국제결혼에 성공한 남성의 20~30%가 중국·우즈베키스탄·필리핀에서 외국인 부인과 함께 PC방·음식점·포토숍 등을 열었다.
고국을 등진 이들이 낯선 타향살이도 감수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에서는 사업이든 직장생활이든 비전이 보이지 않기 때문’. 인천의 모 경찰서에서 경찰공무원으로 일하던 최모(34)씨는 지난해 10월 중국인 여성과 결혼해 지금은 중국 창춘에서 음식점을 열었다. 직장생활에의 미련을 접은 것은 승진경쟁에서 탈락한 후. 그는 즉시 5000만원을 들고 중국에 와 조선족 여성과 결혼식을 올렸고 100평짜리 음식점 사장님이 됐다. “한국에서는 밥그릇 경쟁도 심하고 평생 일하면서 저축해봐야 월급쟁이 손에 뭐가 남아요. 그냥 물가 싼 이런 곳에서 자기 사업하면서 돈도 벌고 싶었어요.” 최씨에 따르면 주변에 있는 한국인 10명 중 1~2명이 한국에서는 살기 힘드니까 국제결혼을 계기로 떠나온 경우라고 했다. 옌지 같은 곳은 거의 한국 도시가 다 됐다는 것이다.
한국 남성들이 국제결혼 ‘원정’을 떠나는 곳은 중국뿐만이 아니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베트남·필리핀·러시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몽골·카자흐스탄 등 한국보다 물가가 싼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다고 했다. 실제로 주 러시아 대사관 홈페이지에는 ‘현지 여성과 결혼한 후 러시아에 사는 것이 좋은지, 러시아에 정착한 후 국제결혼을 하는 것이 좋은지’ 등을 묻는 결혼 수속 관련 글이 100여건 올라온 상태다.


주러시아 대사관 홈페이지에는 결혼 수속 묻는 글만 100여건

최씨처럼 30대 직장인이 첫 결혼을 외국인 여성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수는 재혼을 원하는 40~50대 남성이다. 자의 혹은 타의로 다니던 직장을 나와 퇴직금을 들고 외국에서 신혼살림을 차리는 것이다. 경기도의 B초등학교 교장이었던 김모(58)씨도 퇴직 후 40대의 러시아 여성과 올 초 결혼해 현지에서 살고 있다. 김씨는 러시아 은행에 3000만원 정도를 입금시킨 상태. 한국 아파트에 전세를 놓아 얻는 수입까치 합쳐 부인과 여행을 다니고 있다.
국제결혼 알선업자 전대영씨는 “동남아나 중국의 소도시에서는 말년을 즐기려는 일부 50~60대 남성들이 현지에서 결혼해 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국제결혼의 경우 재산분할에 관한 명확한 법이 없기 때문에 일부 돈 많은 남성들은 현지인 부인을 계속해서 바꿔 망신거리가 되기도 한다”고도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국제결혼 알선업을 하고 있는 박모(40)씨는 “한국인들의 현지 정착이 늘면서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중심지의 집값이 2~3배로 껑충 뛰었다”고 귀띔했다.
현지에서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국제결혼을 택하는 경우도 많다. 영주권을 얻을 수 있고 무엇보다 언어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에서 중고 전자제품을 팔던 김모(53)씨는 작년 10월 고려인 여성과 재혼한 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슈켄트에서 전자제품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국제결혼을 감행한 가장 큰 이유는 “국내 경기가 나빠 해외로 사업영역을 넓히기 위해서”다. 김씨는 국내의 한 결혼 알선업체를 통해 지금의 부인을 만났다. 현지에 도착한 날부터 사흘간 그는 30~40여명의 러시아·고려인 여성과 맞선을 본 후 13번째 만난 여성을 선택했다고 한다. 넷째 날 신부 부모와 상견례를 갖고 한국 대사관에서 혼인신고를 한 후 다섯째 날에는 곧바로 결혼식을 올렸다. 현지의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으로 신혼여행을 끝낸 후 한국으로 돌아와 혼인신고를 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고작 1주일. 그리고 올해 2월 김씨는 처갓집에서 불과 20분 떨어진 곳에 매장을 열었다.

퇴직금 들고 현지에서 음식점·노래방·포토숍 등 열어
“전기·가스·기름값이 거의 거저나 다름없어. 한국은 요즘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들어요? 이 나라는 탁아소도 잘 돼있고 교육비가 얼마나 저렴한데…. 귀족학교도 월 10만원이면 충분하니까 한국에서 아등바등하면서 애들 키울 필요가 없는 거지.” 그는 “작년 10월 처음 타슈켄트에 들어갈 때만 해도 이미 한국인이 3000명이나 진출해 있는 상태였다”면서 “많은 수가 고려인들과 결혼한 후 예식장의 뷔페식당이나 호텔 나이트클럽 등을 운영한다”고 전했다.
외국인 부인이 현지 적응에 실패해 삶의 터전을 옮기기도 한다. 3년 전 러시아 백인여성과 결혼해 살고 있는 이모(37·회사원)씨는 부인의 등쌀에 못이겨 올해 말 처갓집이 있는 하바로브로 떠날 계획이다. “저밖에 돈버는 사람이 없으니까 아침 8시부터 12시간은 나가서 일을 해야 해요. 영업사원이다 보니 술자리도 많고…. 아내가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왜 그렇게 일만 하느냐, 러시아에서는 8시간만 일해도 된다’면서. 말도 안통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니까 우울해 하다가 이틀에 한 번꼴로 싸웠어요.” 러시아 국제결혼을 알선하고 있는 최모(40)씨는 “러시아 국제결혼의 80%가 이혼으로 끝난다”면서 “남자들이 1주일 만에 알선업체들을 통해 결혼한 후 지킬 수 없는 온갖 감언이설로 현지여성을 데려와놓고 부인의 한국 적응도 돕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제결혼과 현지생활에 장밋빛 미래만 보장된 것은 아니다. 김도균씨는 “특정 소도시를 중심으로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사업들만 하다보니 서로 경쟁이 붙기도 한다”면서 “부인과 나이차·문화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이혼을 거듭하는 한국 남자들도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의 경우 외국인에게 차별적으로 물가를 매기는 데다 현지 부인 명의로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 국내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박모(여·42)씨는 “베트남에 오려는 사람들은 대개 한국에서 먹고 살기 힘드니까 현지에서 식당이나 공장을 열려는 사람들”이라며 “모든 사업을 베트남인 부인 명의로 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한국에서 2~3년 함께 살고 신뢰를 쌓은 후 들어온다”고 했다. 박씨는 “바닥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없이는 돈도 날릴 뿐더러 부인의 입김이 센 이 곳에서 십중팔구 이혼당한 후 국내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남인 주간조선 기자(artemis@chosun.com)
[주간조선 200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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