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병찬 기자, a352711@hanafos.com | ||
흔히 언론의 공공성, 중립성 또는 그 자유와 사회적 책임을 정치인도 경제인도 언론인도 법조인도, 위 개인이든 공인이든 강조를 하고 있고, 이는 우리 사회 일원으로써 누구나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나 모두들 언론의 공공성, 중립성, 자유, 책임을 강조 하고 있지만 그러한 성질들이 미디어나 매체의 특성에 맞게 말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Press(언론)이나 방송, 인터넷 매체를 우선 그 기능과 특성을 제대로 구분하고 하는 말인지? 통 일반적으로 그 개념이 구분없이 사용되고 있다. 신문사 기자도 기자고, 방송도 기자가 있고, 인터넷 언론도 기자가 모두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개념을 혼동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언론과 방송, 인터넷 매체에 있어서 그 공공성, 중립성, 자유에 대하여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폐혜가 발생하는 사실을 망각하는 피해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우선 각 매체의 특성을 간단하게나마 살펴 본다면, 매스. 컴의 자유와 책임에 관한 한 학자나 전문가들은 의례히 "Hutchins 위원회"가 발행한 "A Free and Responsible Press"를 바이블로 마음에 새기면서 논의의 근거로 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W. Schramm, F.S. Siebert, T. A. Peterson 등에 의해 발행된 Four Theories of the press도 이미 고전적 문헌으로 간직되어 오고 있기도 하다. 또한 표현의 자유나 사회적 책임과는 관계없이 정치적 선전을 시작으로 초기의 H.D. Lasswell이나, P. F. Lazarsfeld의 two-step flow of communication의 가설도 잊을 수 없는 고전적 이론의 기초로써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할 필수 자료임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특히 전기 Hutchins 위원회, F.S. Siebert 외의 두 고전은 모두가 직접적으로 "언론의 자유와 그 책임"을 주제로 강조하고 있다. [ Press란 무엇인가? ] 이들 문헌들은 정확하게 "press"라는 용어하에 신문, 잡지등 "언론"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언론의 자유와 책임"이라고 할 때 주로 "신문과 시사성 잡지"에 초점을 둔 것이다. 그러므로 Radio와 TV는 그 논의의 대상에서 조금은 거리가 있는 것이다. 설사 Radio와 TV가 다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매우 부분적으로 취급되었고 또한 그것은 그 실무상의 現業방법 등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했던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아마도 방송매체는 "the press"라는 본질적인 개념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고, 다시 말해서 신문, 잡지(the press)에 있어 그 "자유와 사회적 책임"이 크게 문제가 되지만 방송은 본질적으로 신문과 동일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방송은 엄격한 의미에서 신문과 같은 언론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방송은 언론(press)이 아니다. 왜 그런가? "신문의 무한성"과 "방송의 제한성"때문이다. 즉, 신문은 법률이 정하는 바 요건을 갖추어야 발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공중파 방송은 요건을 갖추어도 전파를 발사할 수 없다. 전파는 혼신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 채널에 있어 "제한되기 때문"이다. 신문은 일반 사기업과 마찬가지로 "商社로써 자유시장 원리에 부합되는 사기업"이다. 그러나 방송은 공영, 민영을 막론하고 본질적으로 유한한 전파를 독점하기 때문에 시장원리에 근거할 수 없다. 그래서 "Press라 함"은 사실보도, 스트레이트 기사(취재 기사)에 사실(fact)에 대한 신뢰성이 생명이다. 그것에다 더하여 Press는 자사의 논조, 정치적 성향의 글, 매우 전문적인 글들도 얼마든지 실을 수 있고 그것에는 글의 진실과 高品格에 기초한 인격을 바탕으로 사상은 언론사마다 다를지라도 개폼 품위좀 잡아봐 짜집기한 글이 아니라 필력의 힘이라고 프로패셔날한 논조의 전문성이 생명이다.. 또, 이는 "문자"라는 매체로 얼마든지 실을 수 있는 자유가 있어, 대개, "Press라 함"은 구미 선진국에서는 사실성 취재 보도에 더하여 그 신문사의 사상적 경향과 논조가 뚜렷하고 정치적 책임을 지기도 한다 . 대표적으로 미국의 "헤럴드 튜리뷴 지" 같은 것은 공화당, 해리티지 재단, 후버 연구소등 자유주의 우파의 보수성향 대변지이다. 물론, "뉴욕 타임스"같은 것은 대표적 민주당 대변지 역활을 한다. 그 신문들의 기자들은 사실보도와 그 신뢰성이 생명이며 칼럼 리스트들은 무슨 사상과 이념의 중도나 애매모호함이 없다. 모두 오랜 시간의 뚜렷한 자기 논조들을 가지고 있고 그 자부심은 대단하며 하늘을 찌른다. 이것이 "Press의 특성"이다. 그러나 방송은 전파의 제한성은 있지만 안방 구석구석까지 침투하므로 그 문화적 영향력은 타 매체의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엄청나게 대중적, 표퓰리즘적 이어서 정치적 공정성과 공공성을 강조해야 정상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Press의 개념에 무지하기 이를데 없는 노무현 대통령은 자고나면 "언론개혁"을 말해왔다. 그 언론개혁이 얼마나 무식했으면 언론개혁을 빌미로 무엇이 Press인지?, 방송인지? 구분도 없이 "기자실 통폐합"의 메스를 들이대며 완전 "좌파성 정치, 자의적 어용화의 도구"로만 활용한 것이다. 여기에 조금이라도 정신있는 언론인이라면 미쳐 버려야 정상인데, 하이에나적으로 눈치보기에만 급급했다. 언론인들이 늘 말하는 언론개혁이 노무현 정권에 아부하고 영합한 정말 저급하고 수준낮은 친북좌파성 개혁이었기 때문에 과연 그들을 언론인이라 할 수 있는지? 같은 언론인으로써 얼굴을 들 수도 없고 자괴감마저 느낄만한 사안이었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래도 법조인인데 기본적인 "헌법의 내용"도 모른다는 말인가? 지금은 본인도 기자이지만 일부 몰지각한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언론의 자유"를 외쳐 왔지만 과연 그것이 우리 사회의 공공성과 공익성에 바탕한 책임있는 언론자유인가? 이는 요즈음도 "나훈아 사건"같은 것이 잘 말해 준다. 아무리 한국 사람들의 인식에 "딴따라는 천하다!"라는 웃기지도 않는 생각이 자리잡을 지언정, 지금이 그런 시대도 아니고, 필자가 나훈아씨를 좋아해서가 아니라도 많은 사람이 그를 알고 검증, 그는 그 분야 최고의 자수성가형 노력가다. 그것이 아니라 아무리 천한 사람이라해도 21세기 자유 문화 법치주의 시대에 어떻게 그런 인격적 모욕을 당하고 참고 살 수 있는가? 그 누구도 그렇게 그 사람의 인격을 짓밟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필자가 만약 나훈아씨 였다면 발본색원 전부 기소, 구속감이다. 이는 한마디로 기자 같지도 않은 싸구려 쓰래기들과 "카더라... 인터넷 블로거들"이 만들어 놓은 인격살인이다. 제대로 기자로써의 사명과 져널리즘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라면 도무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필자는 이런 것들을 가지고 "언론의 자유"라고 말한다면, 전혀 아니라고 본다. 언론의 자유를 외치면서, 때마다 정권의 어용 도구였고 눈치보아 왔고 공정하고 공영성을 강조해야 할 방송은 져널리즘은 커녕 소위 하이에나도 못되는 앵무새, 앵무새도 못되는 시커먼 시궁창에 빠진 까마귀였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제자신들은 모른채, 왜 그리도 약자들에게는 물고 뜯는지 난리다. 차라리 나는 언론을 사랑하기에 같은 언론계의 기자가 분명한 사회적 공공성과 정의에 바탕한 불법성 사건 고발기사가 아니라 비열한 약점잡기에만 치중한 시궁창 까마귀성 기사를 싣는다면 기자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그를 아예 씹어 찢어 버릴 것이다. 무식하기 이를데 없는 좌파 정권이 들어서자 솔직히 그들은 정상적인 방송이기를 포기했다. 얼마나 어용도구였으면, 그 막대한 표퓰리즘성으로 온 나라의 문화를 저급하고 빨갛게 알게 모르게 물들여 왔던 것이다. 이를 비판해야 할 언론(Press)은 어떠했는가? 한마디로 정말 부끄럽다. 그나마 있었던 언론이 조,중,동,과 몇몇 인터넷 우파 언론들 이었는데 기자들 자체가 "Press가 무엇인지?" "방송과의 차이가 무엇인지?" 도 모르는 듯, 칼같은 붓, 자존심 있는 붓이 별로 없는 것 같고 "한나라당이 우리편이라 불법과 비리도 나 모른다" 이며, 심지어 정치부 데스크 기자가 자사의 논조가 원래 자유주의 우파 신문인데 성향은 완전 진보적 리버럴 뉴욕 타임스이다. 이가 파시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도 모르는것인가? 자유주의 사상으로 왜 좌파와 멍청한 중도, 위장세력들을 비판하지 못하는가? 비판은 좌파만이 하는 전유물인가? 기자가 비판할 실력이 없고, 데스크가 부하기자를 보호하지도 책임지지도 못하고 눈치보기 때문이다. 언론사 정치부 데스크에 앉아 있는 것은 "하버드 간판"이 중요 한 것이 아니다. 기자가 Press와 방송의 차이도 모르면서, 져널리즘과 정치 사상들도 구분 못하면서 무슨 제대로 된 기자이며, 무슨 져널리즘을 논하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인터넷 이라는 매체로 이제 Press와 방송이라는 매체의 차이도 없이, 그 혼용의 시대로 접어 들었다. 그러니 무식한 정권이 무식하게 키워놓은 좌파성 인터넷 신문들과 그나마 이에 대항하여 우파 자유주의 인터넷 메체들도 힘겹게 만들어졌다. 우리 "뉴스타운"도 그 인터넷 매체들 중의 하나다. 그러나 우리 뉴스타운은 인터넷 매체이기도 하며 분명히 "법률적으로 Press라는 사실"을 모든 기자님들은 명심하시기 바라고, 뉴타방송을 자체 가지고 있지만 공중파 방송이 아니기에 Press인으로써의 자부심을 항상 잊지 마시기를 당부 드린다. 그것은 이미 우리 매체의 특성상 취재 기사 쓰기에는 죽어도 또 죽어도 사실보도, 검증보도, 취재원 보호를 해야 함을 명심하시고, 칼럼이나 사설, 기획물들에 우리는 분명한 Press인이므로 자기 논조, 사상이 뚜렷하고, 늘 그 방면에 프로로서 전문적이여야 함을 명심해야 하는 것이다. 대충 어중간히 "내 사상은 중도다." "빨갛다. " 이념논쟁 왜하나?" 하는 얼토당토 않은 길거리 말을 해버린다면 그를 언론인(Press인)이라고 할 수 없고, 아직 이런 예는 없었지만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인 것이다. 또, 이를 모르고서 돈좀 있고 목에 힘주고 어디서 방귀좀 뀐다고 "나 칼럼니스트야 !" 한다면 그것 만한 착각과 교만이 없는 것이다. 기자는 기사로 말하고 언론인으로써의 존경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수필과 논설은 누구나 쓸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 져널리즘인가?"를 물어보아 제대로 대답을 못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앵무새 방송인이 아니다. 우리는 Press인으로써 방송의 교만과 착각, 문제를 지적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항상 선배님들 상사를 존경하고 후배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며 스스로 공인으로써, 전문성을 높이시기를 노력하며, 언론인으로써의 인격도야를 늘 하시기를 당부드린다. 우리가 Press기자로써의 사명을 다하고 스스로 밝아질 때, 졸고의 본인은 우리 사회가 더욱 밝아지고 미래가 희망이 있고 반드시 우리는 그 희망찬 꿀을 독자들께 전해 줄 수 있다고 믿는 바이다. | ||
(인터넷신문의 선두주자 뉴스타운 Newstown / 메디팜뉴스 Medipharmnews) | ||
[뉴스타운www.NewsTown.co.kr200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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