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화재와 KBS의 후안무치

국보 1호 숭례문이 화재로 전소됐다.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모든 언론과 방송사는 문화재청과 소방당국이 초기에 기민하게 대응했더라면 완전붕괴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적어도 KBS는 이런 식의 보도를 낼 자격이 없다.

소방당국이 밝힌 발화시점은 10일 오후 8시50분께다. KBS 1TV, MBC TV는 메인뉴스 시간인 9시37분께 각각 현장을 전화로 불러 처음으로 화재사고를 보도했다. 8시에 저녁 메인뉴스를 방송하는 탓에 ‘사고 시간’과 ‘뉴스 시간’이 어긋난 SBS TV는 화재 직후 곧바로 화면 하단자막으로 이 사실을 알린 후 9시54분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숭례문 화재’속보를 방송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였다.

공중파는 정규방송을 포기하지 않았다. KBS 1TV는 11시30분 설 특선 ‘앙코르 유교 2500년의 여행’에 이어 11일 0시30분 명화극장 ‘올리버 트위스트’를, KBS 2TV는 11시35분부터 설 특선영화 ‘음란서생’을 계속 방송했다. MBC는 11시40분 아나운서 특집 ‘너나들이 플러스’, SBS TV는 0시15분 설 특선영화 ‘페이첵’을 방송했다. 방송 중간 중간에 자막과 속보를 통해 화재 진행상황을 전하기는 했지만, 그 시각에도 국보1호 숭례문은 화염에 휩싸이며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KBS가 국가 기간방송임을 자임한다면 적어도 1TV는 정규방송을 즉각 중단하고 현장을 생중계로 보도했어야 옳다. 다른 방송사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숭례문 화재 현장을 생중계로 보도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KBS의 무신경은 여전했다. KBS는 오전 01시가 거의 다되어서야 ‘드디어’ 막차로 현장중계에 합류했다. 막차를 탔으니 카메라도 가장 외진 곳에 설치할 수 밖에 없었다. MBC와 SBS가 오직 숭례문만을 비춰준 데 비해, KBS의 영상은 화면 오른쪽 상단에 신호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KBS 관계자는 “재난재해 방송 매뉴얼이 있다. 정규편성을 끊고 생중계를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무리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 중요사안을 속보를 통해 알렸다. 타 방송사와의 단순비교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국가재난방송사로서의 비난은 감수할 수 밖에 없다”고 하고, KBS 재해방송 담당자는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국민들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준 사건이기 때문에 넓은 의미로 볼 때 재난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정규방송 중단 여부는 야간당직 책임자의 판단”이라고 발언했던 모양이다. 물론 독립신문도 KBS가 재난방송보다는 영화를 방송할 때 보다 더 많은 광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걸 모르지는 않는다. 중계차를 비롯한 각종 장비와 인력이 새벽바람을 맞으며 현장으로 출동하는 것에 비해 영화 테이프 하나만 방송실에 걸어 놓는 편이 보다 더 편하고 쉬운 길이라는 점도 얼마든지 인정한다. 하지만, 국민들이 KBS에 준 시청료는 ‘결정적인 순간에 오락프로나 틀어주라고’ 준 돈이 아니다.

삼풍사고 때도 방송사들은 구조대의 동선을 가로막고 생방송을 진행했다. 중상자를 들것에 싣고 가던 구조대가 진행자와 부딪히자 한 여성 리포터가 “지금 방송 중인 것 안보이느냐”고 짜증을 내는 장면이 생방송으로 전파를 타기도 했다. 정규방송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KBS는 북한이 남침해도 ‘정규방송’을 계속할 것인가. 나라가 있어야 방송도 있는 것이다. 언론자유는 전제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오직 자유민주국가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정연주 사장은 이 점을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KBS는 ‘책임있는 당국자가 현장을 지휘하며 확실한 결정을 내려주었더라면 국보 제1호 숭례문의 전소와 붕괴라는 전무후무한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정규방송을 즉각 중단하고 화재 현장을 생중계하라’고 방송현장을 지휘하며 확실한 결정을 내려주었어야할 KBS의 책임있는 당국자들은 그날 그 시각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KBS의 눈에는 남의 잘못만 보이고 자기의 잘못은 보이지 않나보다. 이 질문에 속히 답하라. 독립신문은 정연주 사장의 ‘책임있는’ 답변을 기다린다.

독립신문 사설

[독립신문 http://www.independent.co.kr/ 2008.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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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o1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