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 대한민국 ‘실세’이재오 한나라당 전 최고위원

“나의 반독재·민주화운동은 좌파운동과 거리 멀어”




대통령선거 닷새 뒤인 지난 24일 현 대한민국의 ‘최고 실세’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재오 한나라당 전 최고위원을 만났다. 10년 만에 이뤄진 정권교체의 감격과 흥분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고, 새 정부의 첫 과제로 인수위원회 구성이 막 이뤄지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가 이명박 후보 당선과 정권교체의 1등 공신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우리 나라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선기간 내내 이 전 최고위원의 역할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이명박 캠프에 지어준 짐도 없지 않았다. 이명박 당선자는 박근혜 후보와의 당내경선과정과 이회창 씨의 대선 출마 이후 줄곧 보수층으로부터 보수이념이 비교적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는데, 여기에는 이재오 의원 등 이명박 후보 주변에 포진해 있는 과거 소위 좌파운동권 출신 인사들의 전력과 이미지가 적지 않게 작용했다.

과연 일부에서 우려하는 대로 이명박 당선자의 최측근인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좌파’이며 그것이 향후 이명박정부의 이념적 성향과 정책결정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이 최고위원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그가 과거 과격한 반독재·통일·민중운동에 앞장섰던 것은 “군사독재의 장기화와 우파의 부패를 막고 오히려 한국이 사회주의로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80년대 이후 나온 친북주사파의 논리와도 거리가 먼 자생적인 순수 반독재 민주화운동이었다”고 말했다. 북한 김정일정권에 대해서는 “인민을 굶어 죽이는, 세상에서 용납할 수 없는 교조적 전제주의정권”이라고 비판했다.

다음은 이날 이재오 의원과의 질의응답 내용.

- 우선 이번 대선 결과의 의미를 평가해 달라
“첫 번째는 국민의 염원인 정권교체를 이뤄냈다는 점이다.
좌파에서 우파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무능한 좌파를 심판하자는 것이고 이전의 낡고 부패한 우파가 아니라, 건강하고 깨끗하고 개혁적인 우파로 교체하자는 것이 시대적 요구였다.
두 번째는 경제를 살려달라는 요구에 부합했다는 점이다.
이명박 후보가 이 두 가지 요구를 가장 확실히 충족시키는 인물이었고 국민들이 그를 선택한 것이다.”

- 당내경선의 고비를 겪으면서 경선에서 패하면 정계에서 은퇴하겠다는 결심을 했었다고 하는데, 이 의원에게 정치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정치의 기본은 애국이다. 이 시대의 정신이 이명박 후보를 당선시켜 정권교체를 이루고 경제를 살려달라는 것이었다고 확신했고 그것이 곧 애국이었다. 그런데 만약에 경선에서 실패한다면 그것은 내 노선이 잘못된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정치인은 잘못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고, 무한책임을 지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런 결심을 했다.”

- 초선의원 때 당 원내부총무를 지냈고, 재선된 후 대표후보와 사무총장 그리고 3선에 원내대표와 최고위원까지 역임했고 이번에 마침내 대선승리를 이뤄냈다. 비결이 무엇인가
“정치에 전부를 바치니까. 정치를 한번도 직업으로 생각한 적이 없고, 멋으로 하지 않았다. 목표를 이룬다면 하루를 하다가 그만둬도 그만이라고 생각해 왔다. 골프도 칠 줄 모르고, 술도 안하고 생각이 오로지 한군데에만 있었다.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고 정권교체를 하고 경제를 살리는 것이 나의 전부였고 곧 애국이었다. 이런 차원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은 내가 무슨 전선에서 투사가 되거나 전사가 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쯤에서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좌파가 아니었던가? 지금은 과거 전력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이재오 의원은 지난 40여 년간 우리 나라 반독재·통일·민중운동의 핵심에 있었다.
1965년 한일회담 반대 6·3운동을 시작으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위원장을 지냈고 북한과의 연계의혹이 있는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조국통일위원장, 민중당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며 통일운동에 앞장섰다.
그동안 투옥 5차례에 검찰 구형 총 32년, 선고 총 12년 6개월을 받았고, 1996년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 은평구에서 출마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 전 최고위원의 대답이 이어졌다.

“군사독재가 장기화되거나 우파가 부패하면 국가가 사회주의로 무너지니까, 그걸 막고 자유민주주의를 건강하게 한다는 과정에서 좌파가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민주주주의의 회복이 이뤄지자 근래 좌파정권이 등장하게 된 거고. 당시 논리와 언어가 과격했던 것은 철학적으로 천착하고 사회과학적 용어로 표현하다가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다.

운동권 내에서도 반독재 민주화를 강조하는 우파적 성향이 있었는데, 내가 당시 운동의 방법에 있어서 과격하고 지하운동도 했지만, 자유경제와 시장경제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은 이전에도 지금과 마찬가지였다.
돌이켜보면 젊을 때는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니까 용기 있게 투쟁할 수 있었고, 지금은 그렇게만 보면 대안이 안 나오니까 긍정적으로 보게 되고. 그렇게 바뀌는 게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

- 민주화세력과 북한과의 연계 사례들도 많이 있는데
“우리는 60년대 세대니까 NL(민족해방)이나 주사파와 거리가 멀다. 그건 80년대 이후에나 나왔으니까. 우린 순수한 자생적 민주운동이었다.
우리는 친북좌파, 즉 김정일체제에 동의하는 운동권을 배격하고, 그들이 한 물 간 것으로 본다. 80년대 학생들이 좌파논리를 선택한 것이고, 우리는 반독재민주화를 한 것이다. 내가 90년대까지 몸을 담았으니까 재야운동권에서 40년간 가장 오래 집권한 셈이다.
민중운동의 뜻은 주체가 민중이라는 것이지 계급운동이 아니다. 계급이 아니라 대중이 중심이라는 거다. 북한의 인민민주주의와 다르다.”

- 현 북한 김정일정권은 어떻게 보는지
“그야말로 전제주의정권이다. 이념 이전에 인민을 굶어 죽이는 정권이고 이세상에서 용납할 수 없는 정권이다. 인민을 못살게 하는 그게 무슨 정치고 정부인가. 교조적 전제주의를 용서할 수 없다.”

- 이명박 정부 하에서 북한문제가 어떻게 풀려갈 것으로 예상하는지
“궁극적으로 핵문제가 해결돼야 다른 것이 풀릴 것이다. 김정일 이후 북한의 문제는 예단하기 어렵고, 일단은 핵문제가 해결되면 개혁개방으로 유도해야 하고 그렇게 나오면 그때는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우월한 것을 보여주고 그러한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 이명박 당선자의 ‘보수와 진보를 넘는 실용주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 동안 애국보수단체의 노력도 많았는데
“보수는 원초적인 개념이고, 이념적으로 진보와 대립이 아니라 보수의 바탕 위에서 실용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 보수를 뛰어넘는다는 말이 아니다.
지난 수년간 애국보수단체들이 보수의 깃발을 들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진보로 넘어갈 때 그러한 분위기를 막을 수 있었다. 정권교체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김범수 기자bumsoo@

김범수 기자

[미래한국 http://www.futurekorea.co.kr/2007.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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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자간 만찬회동 내일.

김영대 erbakim@naver.com




28일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간 만찬회동을 28일 갖는다. 회동에서 국정현안과 정권인수 문제가 논의될 예정,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된 뒤 9일만에 첫 회동이 이뤄지는 것이다 양측은 노정권의 임기말 국정수행과 정권 인수작업을 위해 양측은 조기 회동을 원했으나 “이명박 특검법”에 걸려 회동 뒤로 미뤄지게 되었다.

주호영 대변인은 여의도 당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자간 회동이 내일 오후 6시30분 청와대에서 갖는다.

이날 첫 만남의 자리에는 청와대 문재인 비서실장과 천호선 대변인 당선자 비서실장 임태희와 주호영 당선자 대변인이 배석할 예정이라 고‘ 27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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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원 특징? '평균 56세 행정경험자'

실용 중시하는 이명박 당선자의 성향 잘 드러난 인수위

임인혁 조선일보 기자

[편집자 주: 이명박 정권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 32명의 특징은 '행정경험을 갖춘 50대 서울대출신 영남사람들'이 가장 많이 포함된 구성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실용과 신의와 실력을 중시하는 이명박 당선자의 성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조선일보는 평가했다. 아래 글은 경력, 연령, 출신 학교와 지역, 성별과 국적 등에 따른 인수위원들을 분석한 조선일보의 기사이다.]


인수위 특징: 행정경험자에 많고 평균나이 56세, 李당선자 실용중시 성향 드러나

26일 인선이 완료된 이명박 대통령당선자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 32명(특위 위원 포함)의 면면은 ‘실용’을 중시하는 당선자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과거 인수위에 비해 행정경험이 풍부한 인사들이 포함됐고, 현역의원들도 경륜보다는 실무능력을 갖춘 초선 의원들이 주로 배치됐다.

◆직업·경력

4선의 김형오 부위원장을 비롯, 현역 의원이 9명 포함됐다. 특히 분과별 간사 7명 중 5명이 현역 의원이다. 서울대 4명, 고려대 2명 등 대학교수는 12명이다. 이번 인수위가 이전과 차별화되는 큰 특징은 행정경험이 있는 인사들이 대거 포진된 점이다. 사공일 국가경쟁력특위 공동위원장(재무부장관·이하 전직), 강만수 경제1분과위 간사(재경원차관), 최재덕 경제2분과위원(건교부차관) 등 정부관료나 정부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 12명이다.

2002년 ‘노무현 인수위’ 때는 25명 중 현역 의원은 임채정 위원장이 유일했고, 진보성향 교수들과 정부 산하 연구원 연구위원이 대부분이었다. 행정경험이 있는 인사는 김진표 부위원장 등 2명에 불과했다. 1997년 ‘김대중 인수위’는 DJP 연대라는 특수성 때문에 외부인사 없이 국민회의·자민련 소속이 각각 12명씩 배치됐고, 15명이 현역 의원이었다.

◆나이

평균연령 55.5세에서 나타나듯이 50대가 주축이다. 절반 가량인 15명이 50대이며 60대가 11명, 40대가 6명이다. 이주호 사회교육문화분과위 간사가 46세로 최연소이고, 강현욱 새만금TF팀장이 69세로 최고령이다. 대체로 분과위 간사가 연령이 높으면 위원은 젊은 층을, 역으로 간사가 젊으면 경륜있는 위원이 뒷받침하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연령은 ‘노무현 인수위’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 2002년 당시는 평균 연령이 49.8세로 40대가 11명이나 됐고, 60대는 임채정 위원장이 유일했다. 39세의 박범계 변호사도 정무분과위원으로 합류했었다. ‘김대중 인수위’의 평균연령은 54.8세였다.

◆출신지역

영남 출신 인사가 많다. 대구·경북이 9명, 부산·경남 출신이 5명으로 전체의 44%에 달한다. 하지만 서울 출신도 7명이고, 충청 5명, 호남 3명 등 지역안배를 고려한 흔적이 보인다.

2002년에도 영남 출신이 25명 중 10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서울(6명), 호남(4명), 충청(3명) 등이었는데, 노무현 당선자의 고향인 부산 출신이 한 명도 없어 눈길을 끌었다. 1997에는 호남 출신이 7명으로 다수를 이뤘었다.

◆출신학교

출신대학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서울대가 많았다. 32명 중 15명(47%)이 서울대 출신이며, 당선자 출신 학교인 고려대가 5명, 연세대 3명, 건국대 2명 등이다. 서울대 출신은 2002년(14명, 56%)과 1997년(7명, 29%)에도 1위였다.

이번 인수위에는 또 미국 대학 박사학위 소지자가 14명이었으며 영국·프랑스 등 유럽에서 박사학위를 딴 사람도 3명이다. 2002년에는 미국박사 8명, 유럽박사 5명이 포함됐었다.

◆여성·외국인

이번 인수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여성이 위원장이라는 점이다. 여성은 이경숙 위원장을 비롯해, 진수희 정무분과위 간사, 이봉화 사회교육문화분과위원 등 3명이 포함됐다. 또 데이비드 엘든 국가경쟁력강화특위 부위원장은 인수위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으로 기록됐다.

여성 인수위원은 ‘노무현 인수위’에서 이은영 현 의원, 박기영 전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 등 3명이었고, ‘김대중 인수위’에선 추미애 전 의원이 유일했다.



[임인혁 조선일보 기자 : lmhcoo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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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인코리아 http://www.allinkorea.net/2007.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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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부, 인수위원장 이경숙 총장은 누구?



‘MB 정부’의 청사진을 마련할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으로 이경숙(李慶淑.64) 숙명여대 총장이 최종 확정됐다.

이 당선자는 이 총장을 일찌감치 인수위원장으로 점찍어놨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평소 호감을 가졌던 인물이다.

이른바 ‘이명박 정부’의 청사진을 제시할 이 총장은 이 당선자의 국정운영 방향인 ‘CEO형 대통령’, ‘실용정부’의 구상을 얼마나 구현할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이 총장은 교육계와 여성계 인사로서 업무능력과 개혁성, 참신성 면에서 후한 점수 받았으며, 14년간 숙대 총장으로 재임하면서 대학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CEO형 총장’의 전형으로 대표되고 있다.

또 지난해 제 16대 총장으로 재 선출됨으로써 직선제 총장을 4번 연임되는 국내 첫 총장이자 최장수 여성총장이라는 특이한 이력도 한 몫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총장은 ‘부드럽지만 매서운’ 추진력으로 총장 취임 이듬해인 1995년 ‘제2의 창학’을 선언하고 학교발전기금 1천억원 모금을 공약해 개교 100주년인 2006년 이를 달성할 정도로 성과를 보여주는 스타일이라는 것.

처음 모금운동을 추진할 당시 교내에서 ‘학교를 망하게 할 총장이 들어왔다’는 숱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졸업생을 대상으로 ‘등록금 한 번 더 내기 운동’이란 기발한 아이디어로 첫날 행사에서 62억원의 약정기부금을 모으는 대성공을 거뒤, 이른바 ‘이명박 스타일’이라는 것.

이러한 이 총장의 노력으로 숙명여대는 총장 취임 이후 캠퍼스 부지가 2배, 교사 연면적이 3배 가까이 늘었다. 또 캠퍼스 내 21개의 건물이 새로 생겼고 재학생-전임교원 수가 크게 증가하는 등 학교 100년 역사 중 가장 빠른 발전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그는 닉네임으로 ‘춤추는 총장님’이라는 애칭도 있다. 이는 해마다 모금행사나 교내 축제에서 학부모들과 학생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본인이 직접 무대에 올라 ‘댄스’를 선보이면서 붙은 애칭.

이른바 다양한 사회경력도 쌓아온 것도 이 총장의 장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방송위원회 위원,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위원, 제2의 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외교통일부 자문위원, 국회제도개선위원,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해왔다.

반면 1980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신군부의 통치권 확립을 위해 만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입법의원 출신이라는 점과 이후 81년 제11대 민정당 전국구 의원을 지냈다는 점은 치명적인 약점이라는 지적이다.

또 이번 대선에서 선대위원장으로 여러 번 러브콜을 보냈으나 응하지 않는 것과 대선에서도 이렇다 할 성과와 기여를 하지 않았는데 인수위원장으로 추천된 것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이 총장은 1943년 서울에서 태어나 숙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76년 모교로 돌아와 강단에 섰고, 이후 정법대학장, 기획처장 등 요직을 거쳤다.

그는 숙대 수석입학, 수석졸업 및 국내 여성 정치학 박사 3호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으며, 종교는 기독교로 소망교회 권사로 있다.

김영덕 기자 rokmc3151@naver.com

[독립신문 http://independent.co.kr 2007.12.25]

?"6·15선언 독도 문제보다 더 심각" ?´盧정권이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를 추행´ ?"6·15선언은 ´반역´ 면허장!" ? “노무현 정권이 서울을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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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인터넷에서야... 그래야 겠지만... 여기서야 말은 바른말이지. 전두환때 일한게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 그다음... 대통령중 전두환보다 잘한넘 있으면 나와보라.... 왜 이게 치명적이란건지 정말 모르겠다. 군부면 무조건 나쁜건가 ?
(2007-12-26 11:2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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