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16대 대통령선거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막바지 거리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
D-4. 주중 대선일을 앞두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서로를 향해 상대방이 불법·탈법 선거를 자행하고 있다며 격렬한 공방을 벌였다.
민주당은 한나라당 이명박 서울시장이 행정수도건설을 반대해 이회창 후보를 지원했다고 주장하며 이 시장을, 한나라당은 부재자투표 출구조사 결과 수치를 노무현 후보 쪽에 유리한 것으로 언급한 이낙연 대변인을 각각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으르렁댔다.
이 후보와 노 후보는 서로의 대북관을 비난하며 불꽃 공방을 벌였고, 민주당은 이 후보를 겨냥, "외눈박이 대북관을 가진 자"라고 공격했다. 양측은 또 서로가 금품선거를 자행하고 있다거나 후보의 말바꾸기가 일상화 됐다고 비난하면서 막판 공방전에 열을 올렸다.
특히 이 과정에서 잇따라 터진 금품살포 공방의 배경을 수사하던 경찰은 한나라당 유세 참석자들에게 돈을 주다 붙잡힌 40대 주부에게서 민주당 입당원서를 무더기로 발견하는 등 흑색선거전이 극에 달했다.
2002년 12월 16일(월) 양측은 이날 "네가 불법선거를 하고 있다"고 서로를 손가락질 했다. 한나라당 안상수 부정선거방지위 본부장은 "민주당 대변인이 버젓이 논평을 통해 ´3개 대학 부재자투표 출구조사 노무현 절대 우세´ 운운하며 선거법을 위반했다"며 고발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안 본부장 등은 이날 김석수 총리를 방문, 비방행위에 대한 단속강화를 촉구했고, 이상배 총괄본부장은 "민주당이 돼지 저금통으로 모금한 47억원을 선거운동에 쓰고 있다"며 "이 돈과 노무현 후보와의 커넥션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원형 상황 부실장은 "지난달 20일 폐쇄된 노사모가 개혁국민정당 지구당사를 이용해 불법 선거운동을 한 사실까지 선관위에 적발됐다"며 노 후보의 사과를 요구했다.
남경필 대변인은 이날 노 후보 부부의 천주교 세례대장 등을 공개하면서 "천주교 세례명까지 받은 부부가 최근 종교가 불교라며 법명을 받는 등 거짓말 행각으로 국민을 현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아예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개입, 흑색선전 및 허위사실 유포, 지역감정 선동, 청중동원 향흥 등 사례 37건을 담은 한나라당 부정선거 사례집까지 공개하며 총공세를 폈다.
이낙연 대변인은 "한나라당이 선거 판세가 불리하다고 느낀 나머지 최후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 국민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한나라당이 충청권과 부산, 경남 등에서 사람에 따라 차등을 둬 돈을 뿌리고 있고, 노 후보 비방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또 "이명박 시장이 행정수도건설 반대를 주장하며 이회창 후보를 지원했다"며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 후보와 노 후보는 서로를 헐뜯었다. 이 후보는 정부의 햇볕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한 뒤 "북한에 퍼주고 끌려 다니는 실패한 정책을 앞으로 5년간 또 하겠다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한반도의 앞날은 불을 보듯 위태롭다"고 직격했고, 노 후보는 즉각 "대북 현금지원을 끊으라는 주장은 남북대화를 막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응수했다.
이낙연 대변인은 "이 후보의 대북관은 매사를 친북이냐, 아니냐로 보는 외눈박이 대북관"이라고 비난한 뒤 "6.25이후 전쟁은 현 정부에서만 일어났다는 이 후보의 주장은 무지의 소치"라고 비난했다.
| ◇ 2002년 12월 16일 오전 안상수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들이 김석수총리를 방문, 이회창 후보에 대한 음해포스터등이 유포되고 있다며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
2002년 12월 17일(화)양측의 비방전은 더욱 가열됐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막판 뒤집기를 위해 흑색선전 및 금권·관권선거등의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며 불법선거 사례를 공개하는 등 총공세를 폈고, 한나라당은 DJ정부의 관권선거 의혹을 집중제기하는 동시에 노 후보의 ´말바꾸기´ 등을 맹공하며 반격했다.
이냑연 대변인은 대표적인 관권선거 사례로 이 후보의 충남도청 기자회견을 꼽은 뒤 "그렇게 해서라도 충남 민심을 얻어보려는 이 후보의 얇은 속셈이 안타깝고 딱하다"고 비꼬았다.
이 대변인은 또 ´한나라당 소속 지방단체장 대선 개입 실태´자료를 통해 ▲서울-경기-인천 등 3개 단체장의 행정수도 이전반대 및 수도권전철 심야연장 운행 발표 ▲이의근 경북지사의 유력인사 영입 ▲김혁규 경남지사·심대평 충남지사의 이 후보 지지요청 ▲안상영 부산시장의 대선지원 방안 협의 ▲염홍철 대전시장의 측근동원 간접 지원 활동 등을 열거하면서 선관위와 검찰의 철저한 단속 및 수사를 촉구했다.
이미경 대변인은 "한나라당 4선의원인 모 의원 부인이 갈비집에서 주부들을 상대로 선거운동을 하다 적발됐다"며 "한나라당이 돈선거, 갈비먹이기 선거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대철 선대위원장은 한나라당의 색깔공세를 ´신매카시적 수법´이라고 말하면서 "한나라당은 우리 사회의 붕괴를 노리는 세력의 대변인으로 노 후보를 각인시키고 싶겠지만 한나라당의 의도에 휘말릴 국민은 없다"고 말했다.
한화갑 대표도 "자신들이 여당일 때 날 새는 줄 모르고 색깔론을 가지고 재미 보더니 아직도 달밤인 줄 아느냐"고 비난했다.
이에 한나라당은 "통계청이 선물을 돌리고 재경부가 정권 홍보자료를 인터넷에 올리는가 하면 정부 관리들이 민주당 공약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며 "교묘한 정권연장 속임수에 현혹돼선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경필 대변인은 "노 후보는 5월 14일 관훈토론회에서 자립형사립고에 찬성하고서는 어제는 ´반대한다´고 했고, ´행정수도 대전 이전´을 약속했지만 ´대전이라고 말한바 없다´고 말을 바꿨다"고 지적했다.
또 "노 후보가 군복무 단축 등 공약을 마구 베껴 ´인간복사기´라는 별명까지 얻었다"고 비난했다.
2002년 12월 18일(수) 대선일을 하루 앞둔 이날 노 후보와 단일화했던 국민통합 21 정몽준 대표가 지지철회를 전격선언하면서 정치권은 폭풍에 휩싸였다.
정 대표는 이날 서울 종로에서 노 후보와 공동유세를 가진 뒤 밤 10시 30분께 김행 대변인을 통해 "정책공조와 상호존중 등 후보단일화의 큰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며 국민은 각자 현명한 판단을 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성명에서 "노 후보가 서울 명동유세에서 ´미국과 북한이 싸우면 우리가 말린다´는 표현을 썼는데, 미국은 우리의 우방으로 북한과 싸울 이유가 없다"면서 "이는 양측이 합의한 정책공조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 후보는 이날 저녁 종로유세에서 청중을 향해 "일부가 피켓에 ´다음 대통령은 MJ´라고 썼는데, 너무 속도를 위반하지 말라"면서 "여성대통령 감인 추미애 의원과 내 등을 떠받쳐주는 정동영 최고위원도 있는데, 여러 사람이 있는게 든든하지 않겠느냐. 서로 경쟁하며 원칙을 지키는 것이 좋다"고 말해, 정 대표의 지지철회 결심에 결정적 동기를 제공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따랐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한나라당은 "권력나눠먹기 밀약의 예정된 결말"이라며 공식선거전 마감 직전에 터진 돌발상황이 표심에 미칠 영향을 세심히 분석했다.
한편 이날 대전동부경찰서는 17일 저녁 대전대덕구 식당에서 이회창 후보 유세에 참석한 12명에게 돈을 나눠주다 붙잡힌 주부 허모씨(42)의 손가방 안에서 민주당 입당원서가 대량 발견됐다고 밝혔다.
또 이날 인천 집정동과 청천동 주택가에는 ´심판 1219 창에게 한표도 주지 말자´라는 제목으로 이 후보를 비난하는 유인물이 뿌려지는 등 막판 공세가 극에 달했다.
| ◇ 한나라당 이회창후보가 2002년 12월 20일 오전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
2002년 12월 19일(목) 노무현 시대가 열렸다. 노 후보는 이날 진행된 선거에서 1201만4277표(48.91%)를 얻어 1144만3297표(46.59%)를 얻은 이 후보를 57만표 차로 제쳤다.
노 당선자는 당선 확정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저를 지지해주신 국민의 대통령만이 아니라 반대하신 분들까지를 포함한 모든 분들의 대통령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대화와 타협으로 새 시대를 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도 이날 밤 기자회견을 갖고 "최선을 다했으나 또다시 국민의 선택을 받는데 실패했다. 나와 당을 지지해준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며 고개 숙였다.
한나라당은 이날 "우리가 너무 자만했다"며 침통하게 가라앉았고, 민주당은 "노무현 대통령"을 외치며 밤새 축제를 열었다.
2002년 12월 20일(금) 이 후보는 대선패배의 책임을 지고 "이제 정치를 떠나고자 하며 깨끗이 물러나겠다"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이 후보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저는 국민 여러분의 선택을 받는데 실패했고 여러분이 내린 선택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노 당선자에게 축하를 드린다"면서 "부디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훌륭한 대통령이 돼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게 평생의 소원이었고, 사람의 존엄과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게 평생의 꿈이었으며, 진정한 개혁으로 제대로 된 나라,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보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며 "제가 부덕하고 불민한 탓에 오늘의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국민 여러분 앞에 엎드려 용서를 빈다"고 말했다.
서청원 대표는 이날 고위당직자 회의에서 당의 향후 진로에 관해 "조기 전당대회 추진과 강력한 대여견제"라는 두 가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서 대표는 또 "새 정권에 협력하겠다"면서도 "현 정권의 각종 비리를 파헤치는 데 소홀하다면 저항을 받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노 대통령 당선자는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는 것을 시작으로 당선자로서 공식일정을 소화했으며 민주당 전체회의에 참석,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