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복 신화는 복원되어야 한다”
예비역 영관장교 연합회, 이승복 정신 복원 운동 돌입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40년 전 강원도 두메산골 마을로 침투한 북한 무장공비에 맞서 불과 아홉살의 어린 학생이 부르짖은 말이자 전 국민에게 북한 공산주의의 만행과 파괴적인 행위를 단적으로 표현한 당시 속사분교 1학년 이승복군이 한 말이다.
10여년 전만해도 전국 거의 대부분 초등학교 교정 한편에 위치해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온몸으로 공산주의에 대항'한 살아있는 반공교육의 상징이며, 어린들의 친근한 벗이자 선배로 그를 기려 세워졌던 이승복 동상은 이제 강제 철거되다시피 거의 사라지고 겨우 시골마을 폐교된 정원 한쪽 귀퉁이에 버려지다시피 방치되어 있는 것이 오늘 현재 그를 대하는 우리의 현 주소다.
잔인한 살육과 야만행위를 자행한 북한 남파 무장공비에 대항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쳤던 이승복군의 반공정신은 '동포'와 '우리민족끼리' '남북화해협력'이라는 미명아래 좌파 정권과 각계에 포진한 친북좌파 세력들의 북한에 대한 무조건적인 환상과 추종, 그리고 왜곡된 교육으로 인해 청소년은 물론 일부 기성세대까지 극도의 안보의식의 해이현상으로 전이되어 왔다.
이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는 차량 정비의 일반적 원칙이 무시되면 아무리 좋은 차라도 완전하게 굴러가지 못하고 중도에서 멈춰버리거나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고 마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우리사회가 마치 엔진 구석구석과 조여 주어야할 부품 하나하나의 나사가 제대로 조여지지 못하고 기름을 쳐야할 부분에 주어지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풀어지고 무너진 채 10년이 지났다. 반공교육, 반공의식은 말 그대로 케케묵은 낡은 사고(?)로 전락된 채 밀폐된 박물관에 지난 과거의 흘러간 유물로 유기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승복군 사망 40주기를 앞두고 지난 10여년 간 매년 현지에서 이승복 추모제를 올리고 그의 정신을 되살리기에 앞장서온 한 예비역 노병단체가 이승복 정신 되살리기에 발을 벗고 나섰다.
예비역 육·해·공군 및 해병대 영관장교들로 구성된 영관장교연합회(회장 권오강, 예비역 대령. 이하 영관장교연합회)는 오는 12월 9일 이승복군 추모주기를 맞아 그의 정신 복원운동을 위한 결의 행사를 강원도 평창군 현지에서 갖고 대대적인 활동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이승복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지난 1968년 10월 30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산하 124군부대 무장공비 31명이 야음을 틈타 경북 울진군 고포해안으로 상륙, 울진, 삼척, 봉화 등지로 침투해 양민학살과 만행을 자행하고 같은 해 12월 9일에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이승복(당시 9세)군 집을 침입, 집안에 있던 이승복군과 가족(어머니, 여동생 등 4명)을 학살한 북한집단의 천인공노할 사건이다.
이 때 아홉 살의 어린나이에도 이승복군은 이들이 북한무장공비임을 알고 이들에 저항하며 입을 찢기면서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쳐 이후 그의 반공정신은 당시 냉전의 남북관계 시대적 상황에서 반공교육의 상징이자 산 교육으로 이어져 왔다.
정부는 이승복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75년 10월4일 대관령에 이승복 반공관을 건립하고 1982년에는 기념관을 개관했으며, 지역 초, 중, 고생에게 이승복 장학기금을 만들어 모범학생들에게 지급해 왔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공산주의를 배척하는 반공교육의 상징으로 전승된 것이다.
그런데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이자 비무장지대(DMZ) 군사분계선을 사이로 가공할 무기들이 배치된 채 북한 공산주의로부터의 상시 위협에 처해있는 상황임에도 이승복 반공의 상징은 1990년대 후반부터 표면화한 친북 좌경세력들의 기세와 허울 좋은 미명에 편승해 '이승복 사건의 조작'이라는 허위보도와 당시 이 기사에 대한 오보전시회 등으로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루한 법정 공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진위여부를 놓고 법정에서 오랜기간 공방이 오갔던 이승복 사건 보도의 전말은 지난 2006년 11월 26일 대법원에 의해 기소 시점으로부터 무려 14년만에 진실임이 최종 확정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14년간의 진실 공방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좌파정권의 역사교재는 궤를 달리했다. 1969년 초등학교 교재에 실린 이승복군에 대한 만행 사건은 이후 1997년 교재에서 완전 삭제돼 자취를 감추었고 그의 동상 또한 거의 사라지거나 방치되기에 이른 것이다.
권오강 영관장교연합회 회장은 이승복군 추모행사와 관련해 "이승복 사건 진실공방이 여론화돼 장기간 재판이 계류중일 때 당시 무장공비 소탕작전에 참가했던 우리 노병회원들이 당시의 여러 가지 정황들을 확인하고 안보관에 대한 혼돈을 막기 위해 99년 12월 9일 31주기에 회원 200여명이 현지에 가서 지역 내 기관장, 지역주민과 추모행사를 거행한데 이어 지금까지 연례행사로 계속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권 회장은 그러면서 "지금까지 추모행사는 참으로 쓸쓸하고 외로웠다"고 아픈 심정을 토로했다. "1999년 이후 매년 그때 그곳을 가면 그의 묘가 있는 기념관 정문에는 덩그러니 현수막만 하나 걸려있을 뿐 그를 찾거나 다녀간 흔적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며 "그러나 작년 추모일에는 주변이 깨끗이 정화되고 기념관장이 나와서 안내하고 참배도 같이 해 드디어 이승복군의 고귀한 희생이 햇빛을 보게 되는 것 같아 다소 안도하게 되었다"고 사회적으로도 조금씩 바뀌는 시점임을 내비취기도 했다.
그러나 권 회장은 "지난 16일 평창군 교육청 주관으로 이승복 추모제(관에서는 12월이 혹한기로 주로 10월에 한다고 함)가 거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영관장교연합회가 참석해 이승복 복원운동 취지설명과 더불어 복원 결의행사를 갖고자 한다"고 했더니 "교육청에서는 추모행사는 환영하지만 그 외 행사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통보받았다"며 "매우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강원도의 자랑이자 학생들의 긍지인 이승복군을 두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감독관청인 평창교육청이 한 조치에 대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권 회장은 계속해서 2006년 11월 대법원의 최종 확정으로 이승복 사건이 진실임이 밝혀진 이상 그간에 잃어버린 그의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뜻에서 이승복 복원운동을 내실있게 일으켜나가고자 한다"고 의지를 표명했다.
영관장교연합회는 매년 12월 평창군 현지에서 추모제를 봉행하고 있으며, 오는 12월 9일 40주기 추모제에서는 복원운동 결의행사를 성대하게 거행할 예정이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지난 16일 고교 2,3학년의 근현대사 역사교과서가 좌편향되었다며 교육과학기술부에 수정권고안을 요구했다. 지난 좌파정권을 이어오면서 이들 교과서가 좌파 지식인들에 의해 이념적인 편향성에 치우친 채 기록되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특정 이념에 치우친 편향된 시각을 지양하고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객관적으로 기술토록 권고안을 제시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11년째 교과서에서 사라진 이승복군과 관련한 북한 무장공비 만행이 교과서에 다시 복원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코나스넷 http://www.konas.net/2008.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