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이름이 '비순신'이라고?

해외 백과사전.검색사이트 이순신 장군 '왜곡'

세계적인 온라인 백과사전과 유명 웹사이트, 미국 교과서 등이 이순신 장군을 비하하는 등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7일 "경상남도와 공동으로 추진중인 2008년 '이순신 세계화 사업'의 일환으로 온라인 백과사전과 해외 교과서, 유명 웹사이트 상에 소개된 이순신과 임진왜란 내용을 분석한 결과 이순신 장군을 업적을 비하하고, 임진왜란 기간과 거북선의 개발 시기 등을 잘못 표기하는 등 왜곡이 심각했다"고 밝혔다.

인사이크로 피디안(encyclopedian.com)과 호주 백과사전(encyclopedia.kids.net.au), 지식백과사전(knowledgerush.com), 인사이크로피디아포유(encyclopedia4u.com)를 비롯한 백과사전들(fact-index.com, allyouneedtoknow.org, websters-online-dictionary.org)은 "이순신 장군이 일본과 휴전협정을 깨고 노량해전에서 철수하는 일본군을 공격했다"고 기재하고 있다.

이는 이순신 장군이 정당하게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마치 비겁하고 야비하게 전쟁에 임해 결국 전사한 것처럼 묘사한 설명이어서 이를 방치할 경우 전 세계 외국인에게 이순신 장군에 관해 그릇된 인상을 주게 될 여지가 크다는 것이 반크 측의 주장이다.

미국 야후 사이트(travel.yahoo.com), 여행채널(guides.travelchannel.com) 등의 사이트는 임진왜란 때 12척의 거북선만으로 133척의 일본 함대를 불태운 것으로 간략하게 소개했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과 판옥선, 화약 무기, 조선 수군의 용맹 등은 승리의 요인에서 제외된 것이다.

또 바이오크롤러(biocrawler.com), 팩트북(factbook.org) 등은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 1592년 12월 이순신이 이끄는 저항세력에 밀려 (일본이) 철군했다"고 표기했다. 일본의 철군은 1598년 11월이다.

심지어 지식검색사이트인 앤서 닷 컴(answers.com)은 이순신 장군의 이름을 '비순신 장군'으로, 파렉스 닷 컴은 이순신 장군이 고문도에서 전사했다고 잘못 적고 있다.

미국의 교과서 32종 가운데 이순신 장군에 대한 내용이 있는 교과서는 3종밖에 없었으며, 그나마 내용도 3줄 정도로 짧았다. 또 임진왜란을 게재한 교과서는 7종이었으며 대부분 한국사가 아닌 일본사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설명하면서 다루고 있다.

세계 4대 해전과 관련, 해외 웹사이트에서 넬슨의 트라팔가 해전을 검색하면 39만7천여건이 나오고, 칼레 해전은 29만6천건, 살라미스 해전은 8만3천400건이 검색되지만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은 1천370건에 불과하다.

박 단장은 "전 세계에 제대로 알리기 위해 3월 중순에 '이순신 세계화' 영문, 한글 사이트를 개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연합)

konas.net

[코나스넷 http://www.konas.net/20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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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잃어버린 `역사적 죄인들`

원형 잃었어도, 그 모습 마음속 영원히 남아

김응일 기자, skssk119@naver.com



대한민국의 상징인 국보1호 숭례문이 11일 1시 40분에 사라져 버렸다. 10일 오후 8시 45분경에 원인모를 화재로 2층 누각에서 흰연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5시간만에 완전 전소해 전체가 무너져 내려 앉았고 웅장했던 숭례문의 모습은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문화재 안전관리 원점에서 재점검해야

석축 위에는 타다만 서까레와 깨어진 기와장이 어지러이 널려 있고 철거용 건물처럼 흉한 모습뿐이다. 도데체 필자가 처음 화재현장을 지켜본 그시각이 오후 9시경이었다. 숭례문에 불이나 전소한 과정을 되짚어 보면 저정도는 소방당국이 곧 진화시킬 것이라 믿었다.

현장에 진화 작업을 하던 소방관계자는 "기와와 목재 사이에 불이 붙어 속으로 물을 쏴야 하는데 진화가 쉽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불이 크게 나진 않았다"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소방차 30여대와 소방관 90여명이 진화에 나서는 모습에서 왠지 불안감을 느꼈다.

그당시 흰연기만 나고 있던 2층 누각에 소방관들이 밖에서만 물을 분사하고 있었다. 방사된 물은 기와장을 통해 겉으로 모두 흘러 내리고 있으며, 즉 소방관들이 뿌리고 있는 물줄기는 화마에 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진화, 주춤하는 사이 재 발화'

다시 말한다면 마치 화재 진압 연습을 하는 듯 겉으로만 물을 뿌리고 있었다.

상층부 기와장과 측면에서 겉만 적시고 있는 것이다.

발화 40여분인 오후 9시30분께 불씨는 안보이고 연기만 나는 상태가 계속되자 진화가 된 줄 알았다.

소방당국은 화재가 발생한지 45분이 지난 오후 9시35분경 문화재청으로부터 "화재진압이 우선이니 국보인 남대문의 일부를 파기해도 된다"는 협조를 얻어 본격적인 진화에 나섰다.

현장의 소방관들이 진화가 된줄 알고 잔불정리 차원에서 주춤하는 사이에 화마가 되 살아난 것이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화재 초기 서울소방본부 측이 문화재청과 화재 진압 방식을 논의했으나 이 과정에서 문화재청이 '문화재가 손실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불을 꺼달라'고 요청해 초기에 적극적인 진화에 나서지 못했다"고 말했다.

내부에서 진화작업을 한 소방대원은 "화재초기 숭례문이 국보 1호라는 상징성 때문에 문화재청에서(발화지점 부근을) 부수지 못하게 했다. 부수지 않고서는 불을 끌 수 없는데 이게 화재를 키웠다"고 말했다.




'소방당국, 안일한 초동 진화 실패 원인'

불길이 치솟자 소방당국은 오후 9시55분에 화재비상 2호를 발령하고 40여분 뒤 이보다 한 단계 높은 화재비상 3호를 각각 발령했으나 이미 상태는 악화되고 있었다. 오후 11시에는 숭례문의 목조와 기와 등이 무너질 위험이 있자 내부 화재 진압대원들을 철수하여 건물 외부에서만 물을 뿌렸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내외부에서 고압으로 집중적으로 물을 뿌렸지만 기와 안쪽의 기둥인 '적심'부분까지 물이 들어가지 못했고 소방 작업을 위해 뿌린 물이 얼어 기와 해체작업도 불가능해 진압이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한 소방관도 "불이 난 2층 지붕 안으로 물을 쏟아 부었지만 불을 끄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았다"며 이 같은 설명을 뒷받침했다. 소방당국은 오후 11시20분께 냉각수 대신 거품식 소화 약제인 '산소 질식제'를 투입 이 역시 큰 효과를 보지 못했으며 오후 11시50분경 본격적으로 지붕 해체 작업을 개시했다.

그러나 10일 자정께 건물 천장의 화염이 본격적으로 외부로 분출하면서 불기둥이 5m이상 치솟으며 맹렬히 타오르고 있었다. 망연자실한체 외곽에서 물을 방사하고 있었다. 11일 오전 0시25분께 숭례문의 2층 누각 전체가 불길에 휩싸여 더이상 손을 쓸수 없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상징 숭례문 잿더미만 남아

결국 11일 새벽 1시께 2층 누각 지붕이 붕괴가 시작되었고 1시55분에 석반을 제외한 2층 누각 전체 및 1층 누각 대부분이 붕괴되어 폭격을 맞은듯 주저 앉았다. 불은 화재 발생 5시간 15분만인 2시5분께 완전히 진화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상징인 국보 1호 숭례문은 처참한 몰골로 잿더미만 남았다. 화재 발화 시간부터 진화까지 지켜본 필자는 한마디로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소방당국의 좀더 강력한 진화 방법을 사용했다면 이처럼 완전 소실되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번 국보1호 숭례문은 안일하게 대처한 소방당국과 협조체계를 원활하게 이루지 못한 문화재관리처의 안전관리 미숙에서 온 인재라 판단된다. 전국 곳곳에 방화에 노출된 국보급 문화재가 방치되고 있다. 오랜세월 지켜온 문화재를 단순간에 잃어 버린 후손들의 반성해야 한다.



숭례문에 불이 나 완전 붕괴한 과정을 보면서 어느곳에서 이처럼 또다른 문화재가 손실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문화재 안전관리가 너무 미흡하며 각부처간의 유대관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 모두가 반성을 해야 한다. 돈을 드려 복원이 문제가 아니라 생각한다.

숭례문 잃어버린 '역사적 죄인들'

이번 숭례문을 화재로 빼앗겼지만 아직 많이 남아 있는 문화재만이라도 다시는 이런 변을 당하지 말아야 한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안전관리를 강화하고 방화, 파괴에 대한 보호대책으로 일반인 출입을 제한해야 한다. 관람객들이 다소 불편해도 그 오랜 역사를 가진 문화재를 잃어 버릴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민 누구나가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알고 있기에 이정도의 불편은 스스로 감수 해야 할 것이다. 선조들이 물려준 귀중한 문화재는 우리 세대만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원형 그대로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닐까.

국보 1호 숭례문을 지키지 못하고 잃어버린 현세대는 조상님들에게 역사적 죄인이 된 것이다. 특히 이번기회를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 더 이상 단 한점의 문화재를 손실되는 일이 없도록 각별한 대책이 요구된다. 다행히 원형 그대로 복원할 수 있는 설계도가 있다. 복원기간이 3년정도 소요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국보 1호 숭례문 복원에 온 국민이 마음을 한데 모아야 할 때이다. 대한민국 상징 숭례문의 원형은 잃었어도, 그 본질의 모습은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자리하고 있다.

(인터넷신문의 선두주자 뉴스타운 Newstown / 메디팜뉴스 Medipharmnews)

[뉴스타운www.NewsTown.co.kr2008.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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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1호 숭례문' 화재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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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동 1가, 버려진 이승만 동상

우리는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편집부, news@newstown.co.kr
이틀 전 명륜동을 헤매고 다녔다.

이승만 박사의 동상 조각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들 조각은 1956년 서울의 탑골공원과 남산공원에 건립됐던 동상의 일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서와 동사무소도 정확한 위치를 몰랐다. 동네 주민들에게 물어물어 몇 시간을 뒤진 끝에 명륜동 1가에 위치한 한 허름한 집에 다다랐다. 소리가 났다 안 났다 하는 고장 난 벨을 한참이나 눌렀지만, 소식이 없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인근 노인정과 부동산을 다시 뒤졌다. 알아낸 정보라곤 정 모라는 70대 할머니 한 분이 산다는 것, 그리고 겨울이면 딸네 집에 가 있느라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난감했다. 높다란 철문 사이론 마당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근처 공사현장에서 블록 몇 개를 가져왔다. 간신히 시야를 확보해 들여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동상 같은 게 보였다.

카메라 줌렌즈를 갈아 낀 후, 팔을 들어 틈새로 셔터를 눌렀다. 초점이 맞질 않아 수십 커트를 찍어야 볼만한 사진이 한두 장 나왔다. 한 시간 가까이 수백 번 셔터를 눌렀다.

사진 속에 나온 동상은 두 개였다. 사람 키만 한 이승만 박사의 얼굴 부분과 그 보다 조금 작아 보이는 상체 부위였다.

동상 파편은 사람이 살지 않은 빈 집 마당에 흉물처럼 버려져 있었다. 머리 부분은 아이들이 장난을 쳤던 흔적인지, 눈과 귀가 파란 색 노끈으로 묶여져 있었다.




억장이 무너졌다. 이 나라는 건국(建國)의 아버지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이승만 박사는 나라를 만든 인물이다. 해방공간에서 수많은 이들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주장하고 있을 때,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초한 대한민국을 설계했다.

2차 대전 이후 대한민국의 기적적 성취는 이승만이 만들어놓은 시스템 위에서 가능했다. 이승만이 없었다면, 공산화(共産化)는 필연적 과정이었다. 절망의 땅이 된 북한과 희망의 기지가 된 남한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나라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해왔는가?

공공장소에 있던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동상은 4·19이후 모두 끌어내려졌다. 남산공원의 동상 자리엔 분수대가 만들어졌다. 배재대와 인하대에도 이승만 동상이 있었지만, 1990년대 초반 좌파학생들의 데모로 철거됐다. 이들 학교에 있던 동상은 박물관으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기자가 확인해 본 결과, 현재는 정확한 소재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대학 측은 『크기가 너무 커 모처에 저장돼 있다』고 말하면서, 기자의 사진자료 요청도 모두 거절했다.

현재 이승만 박사 동상은 국회 본관 3층 로비와 「이화장」에 하나씩 총 두 개가 있다. 그러나 국회 본관은 일반인의 출입이 허락되지 않는다. 일반인이 볼 수 있는 이승만 동상은 「이화장」 한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지리적으로 일반인의 접근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李 前대통령 양자인 이인수 박사 사택이 위치한 가정집이다.

감사할 줄 모르는 백성이 어떻게 축복받을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의 씨앗은 이승만 대통령이 만든 텃밭에 뿌려져,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기르고 가꿔졌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이승만, 박정희 동상은 물론 큼지막한 기념관이 몇 개는 만들어졌을 것이다.

건국 60주년이다. 이제는 국가를 정상화할 시기이다.

가장 절박하고 중요한 사업은 무엇보다 이승만 박사에 대한 올바른 평가이다. 그리고 후세를 위한 상징화 작업이다.

명륜동의 동상 잔해가 이승만 기념관에 옮겨지고, 광화문 사거리에는 이승만 박사 동상이 건립되는 모습 을 보고 싶다.

- 조갑제닷컴 金成昱 -


90 년대 이승만 박사 동상 파편 소식이 알려진 뒤, 「이화장」측에서 매입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소유자 측이 거액을 요구해 무산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에서 사들여야한다는 여론도 있었다. 그러나 좌파정권이 동상을 악용하려는 의도가 엿보여 이 역시 무산됐다. 『독재자의 말로(末路)는 이렇다』며 조롱의 대상으로 삼으려했던 것이다.

이주영 건국대 교수(사학)는 『대한민국을 건설한 李 前대통령의 동상 파편이 버려져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원론적으로는 소유자 측이 이화장 측에 기증해주는 방식이 문제해결의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신문의 선두주자 뉴스타운 Newstown / 메디팜뉴스 Medipharmnews)

[뉴스타운www.NewsTown.co.kr20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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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대 국새 및 국새의장품 모습 드러내다



대한민국 제4대 국새



대한민국 제4대 국새 인문(印文)

행정자치부(장관 : 박명재)는 1.30(수) 11:00 정부중앙청사 19층 대회의실에서『제4대 국새 헌정식』을 개최하고, 『국새제작단』(총괄책임자 : 민홍규)으로부터 제4대 국새 및 국새의장품 16종을 인계 받았다.

이 자리에서 박명재 행정자치부장관은 제작에 참여한 중요무형문화재 등 『국새제작단』의 노고를 치하하고, 새 국새 제작과 더불어 정부수립 이후 최초로 국새의장품도 일괄 제작한 의미를 강조하였다.

국새는 헌법공포문 전문, 훈·포장증, 중요 외교문서 등에 날인되는 나라의 인장으로 대통령령인『국새규정』에 근거하여 사용되고 있다.

그동안 행정자치부는 ’05.10월 새 국새(제4대)를 새로 제작하기로 결정한 이후, 『국새제작자문위원회』구성(’06. 3), 인문 및 인뉴 관련 “국민 설문조사”(’06. 5), 국새모형 국민 대상 “일반공모”(’06. 9~11) 등의 절차를 거쳐 글씨체(훈민정음체)와 모형(봉황), 제작방법(진흙거푸집을 사용한 전통적 방식), 제원(99×99×99㎜, 금 합금) 등을 결정하였으며, 국새제작자로 국새모형 당선작가인 世佛 ‘민홍규’씨를 선정한 바 있다.

아울러, 국새와 함께 16종의 의장품도 함께 제작한다는 방침아래 ‘민홍규’씨를 총괄책임자로 한『국새제작단』을 구성하고, ’07년 4월부터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가 국새 및 의장품 16종 제작을 완료한 후, 오늘 정부에 인계함으로써 제작을 결정한지 2년 6개월 만에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새 국새는 전통적 방식에 의한 주물로 제작되었으나 조각같은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으며, 국새의장품 16종은, 매듭, 자수, 침선, 칠, 소목, 배첩, 두석, 칠피, 종이배접 등 해당 분야의 최고의 장인들이 집대성하여 만든 작품으로 전통예술의 완결이자 전통공예의 진수를 한데 모았다는 평가이다.

새로 제작된 국새는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실시한 비파괴검사 결과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앞으로『국새규정』(대통령령) 개정(입법예고 중)과 국새 인영 관보 게재 등의 법적절차를 거쳐 “대한민국 제4대 국새”로 사용되게 된다.

(서울=뉴스와이어)

대한민국 새 국새의 비밀을 공개합니다

언론문의처 : 행정자치부 의정팀 서기관 김윤배 02-2100-3133

출처 :
행정자치부

홈페이지 :
http://www.mogaha.go.kr



[뉴스와이어 www.newswire.co.kr 200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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