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관련된 곤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정치인들이 동원하는 모범답안이 있다. ‘가정을 전제로 한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겠다’는 일성(一聲)이다. ‘가정(假定)’은 ‘현실(現實)’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 않기에, 이런 대답이 나오면 질문자들도 곧바로 대화의 방향을 튼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노동당, 이회창 후보 측은 그동안 BBK 사건에 대해 가정법에 근거한 공세를 취해왔다. “BBK가 이명박 후보 소유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주가조작에 이명박 후보가 직접 가담했다는 증거가 나오면 어떻게 하겠느냐” “김경준이 제시한 이면계약서가 사실로 밝혀지는 경우 후보를 사퇴할 용의가 없느냐”는 식의 공격이 이어졌다. 대변인의 공식 성명 이외에도, 몇몇 의원들은 독자적으로 입수했다는 자료 사본을 들고 나와 언론인들을 만나기도 했다. 가정에 근거를 둔 질문과 의혹제기를 일부 언론이 받아쓰면, 이러한 보도를 근거로 당에서 다시 문제를 확대재생산하는 ‘거짓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졌다. 이들의 주장은 그러나 ‘한 방’에 붕괴했다.
5일 오전 11시, 검찰은 기자회견을 통해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 증권거래법 위반, 사문서 위조 등 혐의로 김경준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또 “이명박 후보가 주가조작에 공모한 혐의가 없으며 BBK는 김경준이 단독으로 설립한 회사”라고 수사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한 마디로 말해 그 동안 범여권이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모든 내용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결론이 이렇게 나왔는데도,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노동당, 이회창 후보 측은 ‘가정에 근거해 특정후보를 몰아세웠던’ 자신들의 행태를 반성하지 않는다. 이들은 “검찰 발표가 사실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또 다시 가정과 추측에 근거한 공세를 계속하고 있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와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5일 오전으로 예정된 검찰의 BBK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 반발, 이날 유세일정을 중단하기로 했고, 검찰의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대대적인 항의시위도 벌일 예정이라고 한다. 서초동 검찰청사 앞 항의집회, 광화문 촛불시위 등이 거론되는 모양이다.
놀라운 일은, 거짓말의 최대 피해자인 이회창씨조차 거짓말에 근거해 이명박 후보를 공격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묻는다. 김대업의 사기폭로와 기양건설 20억 수수설, 그 밖의 숱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공격과 그로 인해 자신이 입었던 피해에 대해 이회창 후보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정권을 잡겠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이회창 후보가 내세우는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법치국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라는 대의명분은 개인의 집권욕을 감추기 위한 또 다른 거짓말이라는 이야기인가.
가정은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다.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은 사실이 아니다. 정동영, 권영길, 이회창 후보는 지금까지의 행태를 국민 앞에 깨끗이 사과하고, 이제부터라도 정책개발에 전념하기 바란다. 거짓말을 동원해서라도 지지율 1위 후보를 어떻게든 흠집내는 것이 선거운동의 전부라면, 그런 후보들이 꿈꾸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과연 어떤 것인지를 국민들은 준엄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독립신문 사설
http://www.independent.co.kr/ [독립신문 http://independent.co.kr 2007.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