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애타게 기다리던 구국의 영웅이 드디어 탄생했다. 바로 최민희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이다. 왜 그녀가 구국의 영웅인가. 영웅이란,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동안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었던 업적을, 홀홀단신으로 단방에 성취한 개인을 일컫는다. 최민희는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일을 혼자서 해치웠다. 그녀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전진 방향으로 밀고나간 희대의 위인인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이번 중간광고 허용결정 과정에서 보여준 그녀의 일 처리 방식이 너무나 폭력적이고 무례했다고. 이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12일 공개된 방송위 회의 속기록을 보면 우리 ‘중고(중간광고)의 여왕’은 여론 수렴과 신중한 결정을 주장하는 조창현 위원장에 맞서 10여 차례나 “결정을 하라” “투표로 하라” “표결하라”며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나에게 헌법적 질서와 원칙을 강요하지 말라”고 울분을 토했던 대통령의 말씀을, 비록 몇 년이 지난 뒤지만, 본인을 포함한 국민 모두가 그 말이 억지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이토록 과감하게 행동에 옮기는 불굴의 용기!
그것만이 아니다. 우리 중고의 영왕은 과거 민주언론운동 시민연합 사무총장과 공동대표를 지내며 줄기차게 중간광고에 반대해왔던 인물이다. 2001년 12월 한 신문 기고에서는 “중간광고는 방송의 공익성 측면에서 합리적인 제도가 아니다” “광고로 디지털 재원(財源)을 마련하겠다는 것은 시청자에게 부담을 전가(轉嫁)하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다른 글에서는 “중간광고를 도입하면 방송이 돈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며 강경한 주야장창 반대입장을 개진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의 와중에서 보여준 화끈한 U턴!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만약 중고의 여왕이 지난 수 년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점진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바꿔왔다면? 발언 시점을 조사하고 변신의 폭을 추적하는데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이 필요했을지는 불문가지다. 이 화끈한 U턴은 이런 조사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준 일대 쾌거다. 그래서 최민희는 우파 시민단체들의 수고를 덜어준 구국의 영웅이다.
그녀의 기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일부 몰지각한 언론과 국회의원들은 지난해 연말 ‘거리의 시민운동가 행세를 하던 최씨가 하루아침에 고급 승용차를 타는 고위공직자로 권력을 받아먹는 것이 적절한 처신인지, 업무 능력은 있는 것인지’를 두고 우리의 영웅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영웅의 고향 격인 민언련에서 최부위원장을 수호하며 “방송사 등 업계 이해에서 자유롭고, 시청자 주권을 지키며, 방송 공공성을 구현할 수 있는 전문성과 역량을 갖춘 인물”이라는 멘트를 날린 것은 정확무비한 인물평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번 중간광고 허용결정 과정에서 한 불손한 기자가 “왜 시민단체 시절에는 그토록 반대하다가 지금은 180도로 돌아서 찬성하느냐?”고 물었다. 우리의 영웅은 “시민 운동을 할 때는 사정을 잘 몰랐다. 안에 들어와서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더라”라고 명쾌하게 답변했다.
뜻있는 국민들은 왜 좌파 운동가들에 비해 우파 운동가들의 조직기여도와 헌신성이 떨어지느냐고 묻는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좌파는 직업이 없고 우파는 직업이 있다. 무능해서 할 일이 없는 자는 전업운동이 가능하고, 유능해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우파가 돈 벌어 세금을 내면, 좌파가 그 돈으로 허튼 짓을 한다는 건 세계만방 동서고금 불변의 법칙이다. 여기서, 좌파 시민단체들의 전형적인 행동패턴을 살펴보자. 일단 ‘남의 돈으로 잘 먹고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로 충만’한 인물들이 한 데 모인다. 그리고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고 좌파 인터넷 매체들에 창립취지문, 후원회 계좌번호를 올린다. 두 어 명이 같이 다니면서 ‘단체행동’이라고 포장한 뒤 기업체를 협박하는 한편, 지연 학연 혈연 등 온갖 인맥을 동원해 이런저런 위원회나 남의 돈을 자기 돈처럼 쓸 수 있는 자리로 영전하기를 호시탐탐 갈구한다. 이번 정권에서 온갖 위원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건 우연이 아니다. 그러므로, 별다른 밥벌이 수단이 없는 좌파에게 시민단체만큼 소중한 둥지는 없다. 출세의 발판이요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출발점으로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웅만 해도 차관급 부위원장 대우에 연봉과 직급보조비, 급식비, 월정직책급 등으로 한 해 1억1025만원의 급여를 받으신다. 거기에 더하여 월 170만원의 업무추진비를 쓰고 체어맨 승용차(이 대목에서, ‘시민운동가 출신이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대형차를 타다니’ 같은 불경한 말은 입에 올리지 말도록 하자)와 운전기사, 비서를 거느리신다.
그런데...가슴 벅차게도, 이 좌우 대격돌의 전장 한 가운데서, 우리의 중고의 여왕이 친히 ‘시민 운동을 할 때는 사정을 잘 몰랐다’고 고백하신 것이다. 좌파 시민단체 구성원들에게 ‘전문성이 떨어진다’라는 평가를 붙여 그들의 공직진출을 향후 20년 간 봉쇄하더라도 아무런 할 말이 없게 만든 저 기적의 일성(一聲)! 자신의 무능과 무지를 솔직하게 고백한 당당한 참회! 최 부위원장은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지금 전통적인 언론운동 단체들, 몇십 년 운동해 온 민언련이나 언론개혁시민연대도 중간광고를 강하게 반대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언론관련 시민단체들이 곧바로 “중간 광고의 허용이 시청자 주권을 침해한다”며 일제히 반대성명을 냈다. ‘자신의 한 몸을 던져 나라를 구한 쾌거’라는 상찬과 ‘지 하나 잘 되자고 수 십 년 동지들을 헌신짝처럼 팽개친 망발’이라는 반응사이에서, 일반인들은 운동권 내부 높으신 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정치공학과 격렬한 투쟁의 실체를 몰라 그저 답답하기 그지없을 따름이다.
외국에서도 중간광고를 하고 있는 나라가 있기는 하다. 그런데, 중간광고의 광고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결정적인 순간에 화면이 멈추며 ‘다음 주 이 시간에...’라는 자막이 뜰 때도 열을 참지 못하는데, 이런 상황이 한 두 번도 아니고 10분 간격으로 거듭된다면?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결승 한일전, 2-3으로 끌려가며 맞이한 9회말 투아웃 만루상황, 4번타자 김동주의 시원한 한 방이 야외로 쭉쭉 뻗어가는데, ‘넘느냐 넘느냐...’의 감격일성 중에 ‘중간광고’가 흘러나온다면? 시청자들이 격렬한 어조로 광고주를 비난하는 사이, 광고주들의 메시지를 단순히 ‘전달’한 방송사는 논쟁의 소용돌이에서 한 걸음 물러나 조용히 수입을 헤아릴 터이다. 하기야 중간광고 기대수입이 연간 5,300억원에 불과하다면 직원들에게 천문학적인 인건비를 지급하고도 매년 평균 4,000억원대의 흑자를 올리는 방송사측 입장에서야 그리 큰 돈은 아니겠지만.
거듭 말하지만, 학자들은 중간광고의 광고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다고 본다. 시청자들의 심리상태가 짜증직전인데, 무슨 얘기를 하면 새겨 듣겠느냐는 논리다. 영국에서는 그래서 역 중간광고를 실시하는 기업도 있다. 영화 중간에 중간광고 시간을 다 사버리고, 프로그램 시작 전에 ‘본 영화의 중간광고는 0000회사에서 모두 구입했습니다. 중간에 끊어지지 않는 즐거운 영화감상의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라는 자막을 넣는 것이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 시청자 주권운동을 제안한다. 시청자들이 떨쳐 나서면, 중간광고를 자연고사(自然枯死)시키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간광고 광고주 제품 불매운동을 전개하고, 회사 앞 항의집회를 개최한 후 불쾌지수 상승에 대한 피해보상을 요구하자. 어느 누가 감히 성난 군중 앞에서 중간광고를 고수할 수 있으리오. 우파 운동이 이처럼 소비자 운동, 시청자 운동과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하나 만으로도 최민희라는 개인에게 거듭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 한다.
방송사들이 중간광고를 밀어붙인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만들어놓으면 판매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방송사는 공중파를 독점한 기형적 구조에 편승해 자신들의 이익을 매우 손쉽게 최대화할 수 있다. 차제에 공중파 경매제를 실시해 신규참가자들을 방송계로 끌어들이고, 경매 이익금을 사회에 환원하자. 방송국 수를 늘려 독과점체체를 완전경쟁 체제로 바꾸는 것은 또 어떤가.
행여 그럴리야 없겠지만, 방송사 측에서 강매를 하는,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진다면? 광고주에게 중간광고 구입을 요구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정의의 이름을 빌려’ 응징하는 사례가 일부 후진국에서 없지 않다고 들은 적은 있다. 노파심에서 광고주들에게 회사의 이미지를 회손하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는 비책 한 가지를 일러드린다. 일단 중간 광고 시간을 구입하시라. 그리고, 그 시간에 ‘만나면 좋은 친구’나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같은 방송사 로고송을 틀어달라고 요청하고, 대신 로고송 나가는 바로 시간의 10분의 1만 할애해 달라고 매달리시라. 방송사의 이미지가 물넘은 둑처럼 무너져 내리는 사이, 광고구입을 지속적으로 강권하는 무리한 요구도 봄눈 녹듯이 사라질 터이다. 이 글에 적시한 모든 각성의 계기를 마련해주신 구국의 영웅 최민희 위원께 기쁨에 겨워 다시 한 번 꾸벅 절 올리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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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신문 http://independent.co.kr 2007.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