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리더십개발원/신년인사]
세종을 통해 인연 맺은 모든 분들께 “다시 세종이라면”
다시 세종이라면,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할까?
몇 년 전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다가 깨달은 게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세종 같은 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그 커피숍 이름이 마침 “앤제리너스(Angel-in-us)”였는데, 제게는 엉뚱하게도 “세종이너스(Sejong-in-us)”가 연상되었습니다. 저는 대단한 것이라도 발견한 양 즉시 페이스북에 올리고 “우리 안의 세종리더십을 깨닫고 실천할 것”을 다짐했었습니다.
새해를 맞는 이 아침에 그 말을 떠올리면서 문득 부끄럽다는 생각이 엄습해 왔습니다. 대한민국 사람 모두에게 세종대왕의 DNA가 전해지고 있다면서, 4년 전에 그 실천을 제안해놓고는 정작 저 자신은 그러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일었습니다. 말로만 세종을 외친 게 아닌가 자책되었습니다.
말로만 세종을 외친 제 자신이 더욱 부끄러운 것은 올해가 정유년(丁酉年)이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420년 전인 1597년 정유년에,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5년 동안 그토록 처참히 짓밟히고도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1592년 임진년에 무엇 때문에 왜란을 겪어야만 했는지, 지금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 잡아가야 하는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1597년 1월의 실록을 펴면, 국왕 선조는 여전히 명나라 군대에 의지해 전쟁을 마무리하려 하는 한편, 소서행장의 밀서를 믿고 “힘을 모아 가등청정을 제거하는” 협동 작전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조정 대신들은 회의(會議)한다고 모여 “머리를 맞대고 일을 모의하였으나 한 가지 꾀도 내지 못했다”고 합니다(1월 2일). 군공을 세운 안위 등을 포상해 나라 위해 헌신하는 기풍을 조성하자는 이순신 장군의 요청은 무시되었습니다(1월 1일). 설상가상으로 선조는 “임금을 속이고, 적을 토벌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를 파직시켰습니다(1월 28일). 한마디로 거짓 정보에 휘말려 우왕좌왕 휩쓸리다가, 좋은 제안을 무시하더니, 급기야 인재를 곤경에 몰아넣는 모습이 420년 전 군신들의 행태였습니다.
실천력 부재로 5년 만에 또 다시 큰 국난을 겪었던 어리석음은 어이없게도 40년 뒤에 똑같이 되풀이 되었습니다. 불과 10년 전인 1627년에 정묘호란을 겪은 조정 군신들은 아무런 대책 없이 ‘척화-주화’ 논쟁만 계속하다가 1637년에 결국 삼전도(송파)의 치욕을 당했습니다. 정묘년과 병자년 사이의 ‘10년간의 위기’ 역시 말만 무성하게 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 제시와 실행이 뒤따르지 않은 정치의 실패였던 것입니다.
희망을 이야기해야 할 새 아침에 역사 속 ‘정치의 실패’를 말하는 까닭은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도 그들과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는 ‘정확한 판단’과 ‘적시 조치’라는 정치지도자의 핵심 덕목이 실종된 현상을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정확한 판단에 기반한 적시조치라는 정치의 덕목을 실천하는 방법은 사실 의외로 간단합니다.
< 세종실록>을 보면 그 시대 군신들은 집현전이라는 싱크탱크의 고증을 거친 바른 지식을 토대로 어전회의라는 집단토론장을 적절히 활용했습니다(지식경영). 그리고 거기서 나온 아이디어와 대안을 실무 책임자에게 맡겨 실행하게 했습니다. 세종에 따르면 이 때 중요한 것은 “의심하지 말고” 인재에게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담당자에게 최대한의 재량권을 부여해야 적시에 조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인재경영).
< 세종실록>을 읽다보면 마지막에 도달하는 결론은 늘 하나입니다. ‘사람이 문제이고 사람에게 길도 있다’는 결론이 그것입니다. 세종에 따르면 “정치하는 요체는 인재 얻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담당자가 그 직무에 적합한 자이면, 모든 일이 다 다스려진다.”고 합니다(세종실록 5/11/25). 그런데 지도자는 인재를 구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재와 인재를 연결하는 일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게 세종의 생각입니다.
인재와 인재를 연결한다는 말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지식과 지식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는 “역대의 뛰어난 임금을 보건대 통하지 않음이 없었다”면서 풍수와 천문지리, 수학 등 여러 분야에서 “정숙하여 관통한 공부[精熟貫穿]”를 한 인재들의 연결을 강조했습니다(세종실록 15/2/2).
둘째, 과거 인재가 이룩한 것을 지금으로 계승하는 일입니다. 성과를 거두는 정치를 하려면 ‘소술선지(紹述先志), 즉 지금까지 중시되었던 정신문화와 쌓아온 업적을 잘 계승해야 한다는 게 세종의 생각이었습니다.(세종실록 3/2/25). 취임사에서도 그는 태조와 태종이 밝히고 일궈온 창업정신과 업적을 잘 계승하는 것[纉承]을 첫 번째 사명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세종과 그 시대 사람들은 지금 결정하고 조치한 것을 미래의 세대에게 전수하는 것 역시 경시하지 않았습니다. 재위 초반에 <고려사> 개정을 이야기하면서 그는 ‘개록감후(皆錄鑑後),’ 즉 “모든 선과 악을 다 기록하는 것은 뒤의 사람에게 경계하는 것인데, 재이라 하여 이를 기록하지 않는 것이 옳겠는가.”(세종실록 2/2/23)이라고 하여, 후대의 거울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셋째, 당대의 인재와 인재 사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일입니다. “우리나라 활자본의 백미”인 ‘갑인자(甲寅字)’를 제작할 때의 조직구성과 역할 분배가 그 예입니다. 실록을 보면 당시 ‘갑인자 도감(都監)에는 왕명을 수행하는 중추원 소속 이천의 감독 아래 집현전, 오위(五衛)라는 중앙군 조직, 의정부 관리, 사역원 관리, 주자공 다수로 팀원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목되는 것은 팀 구성원의 역할 구분인데, 세종은 “이천에게 명하여 그 일을 감독하게 하고[監其事]”, 집현전의 김돈과 김빈, 그리고 오위 소속의 장영실 등에게 “일을 주장하게 맡겼습니다[掌之].” 그 결과 프로젝트 책임자(Project Manager) 이천은 집현전, 교서관, 주자소, 관상감, 조지서 등 여러 부서에 소속된 기능공들을 모아서 이 일에 집중하게 하는 한편, 중앙 부서와 각 도 감영의 유기적 협업을 이끌어 냄으로써 “쉬우면서도 갑절이나 효과적으로” 명품 활자를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새해 인사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세종정신을 깨닫는데 그치지 말고, 기필코 실천하는 데까지 나가겠다는 저의 다짐을 말씀드리다 보니 그리 되었습니다. 저는 올해 세종이 실천했던 연결의 리더십, 즉 ① 지식과 지식을 연결하는 일과, ② 과거의 업적을 계승하고 현재의 성패(成敗) 사례를 미래로 잘 전달하는 일, 그리고 ③ 우리 시대의 인재와 인재를 연결시켜 상생하게 하는 일을 본격화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세종이라면(ifsejong)”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하려고 합니다. 즉 오늘날 세종이라면 과연 어떻게 할 것인지 삼가 생각하면서 차세대를 위한 연구, 교육 및 연계사업을 체계적으로 전개하는 장을 가꾸어가려는 것입니다. 또한, 2005년부터 꾸준히 열어왔던 실록학교도 완전히 새롭게 정비하여, 미래를 염려하며 준비하는 많은 분들과 깊은 통찰과 영감을 나누는 일도 재개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일들에 앞서 아마 공식적으로는, 이번 5월 초 개최할 “제1회 실록학교문회(門會)”를 통해서 인사드리게 될 것 같습니다. 세종 탄신일(5.15) 직전의 토요일인 오는 5월 13일에 2005년부터 지금까지 세종공부를 통해 저와 인연을 맺은 분들을 초청하려고 합니다.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화창한 봄날, 우리가 세종영릉에 모여 지혜를 모으다 보면, 세종정신을 실천할 구체적인 길도 찾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위기는 곧 위험한 기회”라는 것을 믿고 ‘우리 안의 세종’을 부지런히 찾아 함께 실천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2017년 1월
온 마음을 기울여 세종이라면(ifsejong)을 준비하며
한국형리더십개발원장 박현모 드림
찾아가는 뉴스미디어 넘버원타임즈
[2017. 1. 8. www.No1times.com]
'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기숙 칼럼] 유관순 열사의 비폭력 3·1운동 정신으로 태극기를 들자! (0) | 2017.02.08 |
---|---|
[이창호 칼럼] 정의로운 사회가 국가를 이끈다 (0) | 2017.01.09 |
[이창호 칼럼] 우리는 할 수 있다 (0) | 2017.01.02 |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수호의 ‘현대판 김종서 장군’ 서정갑 본부장 (0) | 2016.10.29 |
[이창호 칼럼] 안중근 의거 107주년에 즈음하여 (0) | 2016.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