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최근 서울시내 302개 고교 중 겨울방학기간 내 우리의 근현대사 강좌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김성욱 기자가 한 여자고등학교의 초청으로 이들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한 후 그가 느낀 소회를 옮겨 적은 내용임. <편집자 주>
연사(演士)의 무명(無名) 탓인지, 전교조 교사의 제지(制止)는 없었다.
강의 직전, 역사를 담당하는 한 선생님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을 뿐이었다. 인터넷에서 프린트 된 2페이지짜리 기자의 경력을 들고 오셨다. 『좌익추적전문기자』라는 부분을 짚으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어린 학생들이니 조심해 달라』는 부탁이 이어졌다.
전날 강연 의뢰 받으면서도, 수차례 약속했던 부분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좌파, 우파 얘기하려는 게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많은 성취를 이뤄냈는지 자랑하러 왔습니다.』 기자는 자신 있게 말했다.
강연이 시작됐다. 이렇게 어수선한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수능이 끝난 고3들, 저들이 딱히 원해서 열린 자리도 아니다. 게다가 여학생, 그것도 250명은 돼 보였다.
나는 전형적인 「화성(火星)남자」이다. 형제는 물론 친척 중에도 여자가 귀하다. 여자란 언제나 난해한 미스테리다.
시험 끝난 여고생 250명에게 도대체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저들에게 「역사(歷史)」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대형(大型)기도원에 2천명을 모아 놓고 강연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처럼 난감한 날은 처음이다. 강연이 10분을 넘어 갔지만, 아예 자는 아이, 장난치는 아이, 잡담하는 아이가 계속 나왔다.
북한 문제가 나왔다.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미리 준비한 사진들을 보여주자, 탄성이 흘렀다. 처음 보고, 듣는 듯한 눈빛과 표정들이었다. 굶어죽는 아이들, 꽃제비, 탈북과 강제송환, 그리고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에서 탈출한 신동혁氏의 화상(火傷) 사진과 설명에 학생들은 질겁했다. 이야기는 중국에서 팔려 다니는 북한 처녀들 이야기로 넘어갔다.
『여러분 나이 동족 처녀들, 수십 만 우리 누이들이 개처럼, 돼지처럼 팔려 다니는 것을 알고 있는가? 침묵하는 우리는 과연 양심적인가? 민족공조와 민족화해, 우리는 민족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아!」 하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1시간 30분. 금새 흘렀다. 저들에게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어떻게 전할까 고민했지만, 대충은 전한 것 같았다. 평가는 그들의 몫이다. 나는 물었다.
『여러분은 성공한 한국식 모델을 따라갈 것인가? 실패한 북한식 모델을 따라갈 것인가? 선택은 자유다. 그러나 그 미래에 살아갈 사람은 여러분 뿐 아니다. 여러분의 2세와 3세 그리고 후손들, 그들이 주인공이다. 어떤 미래를 물려주고 싶은가? 성공한 자유민주주의인가? 이미 망(亡)한 사회주의, 공산주의인가?』
강연을 마치고 나오는데, 젊은 선생님 몇 분이 투덜대는 소리가 들렸다. 씩 웃으며 강당을 빠져 나왔다. 동행했던 무한전진 회원들과 차에 오르니, 시각은 벌써 정오를 향했다.(Konas)
김성욱(프리랜서 기자)
[코나스 http://www.konas.net/2008.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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