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13. 14:07
“잠적 김현희, 29만원에 긴급수배”
2003년 12월18일자 오마이뉴스 기사의 요지경
趙甲濟(조갑제닷컴) 2003년 11월부터 느닷없이 대한항공 폭파범 金賢姬를 가짜로 몰려는 세력들이 한 방향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기기묘묘하고 허황되고 가소롭고 가증스러운 의혹들이 기자, 聖職者(성직자)라는 직업을 가진 집단에 의하여 제기되었다. MBC, SBS, KBS, 일부 유가족들, 일부 신부들, 일부 親정부 좌경매체들, 의혹제기전문가들이 이 ´마녀사냥´ 분위기를 주도하였다. 김현희씨는 사는 집이 MBC-PD 수첩에 노출되자 피신하였다. 이런 분위기를 만든 것은 대체로 親정부 좌경 조직이었다. 마녀사냥의 분위기를 활용한 국정원은 2004년에 대한항공 폭파사건을 의혹사건으로 규정, 재조사 항목에 넣었다. 국정원은 김현희를 불러 신문하려고 집요하게 압박하였으나 金씨 부부는 이를 완강하게 거부하였다. 국정원은 의혹제기자를 조사관으로 채용하고, 많은 국가예산을 낭비한 끝에 2007년에 대한항공 폭파 사건의 진실은 변함이 없다는 발표를 하였다. 그 뒤 지금까지도 진실화해위원회는 또 다시 이 사건을 의혹사건으로 규정, 김현희씨를 조사하려 하고 있다. 김현희씨에게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김씨 부부에겐 아직 정권이 교체되지 않은 것이다. 다행히 李東馥 전 국회의원, 月刊朝鮮, 그리고 일본의 NHK가 金씨의 기구한 사정을 알리고 李明博 대통령이 관심을 표명하자 韓日 정부의 합의로 김현희-다구치 야에코(리은혜) 아들의 만남이 성사될 것 같다. 노무현 좌경깽판 정권하에서 기고만장하였던 의혹제기자들은 국가예산을 낭비하게 하고 국민들의 머리를 어지럽힌 代價를 치러야 하고, 치르게 하여야 한다. 예컨대 2003년 12월18일자 오마이뉴스(인터넷매체)에는 <"잠적한 김현희, 현상금 29만원에 긴급수배". KAL가족들, 19일 낮 연희동 전 전대통령 집앞 골목시위 예정>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필자는 정지환 기자이다. [KAL858기가족회(회장 차옥정)와 KAL858기사건진상규명시민대책위원회(위원장 김병상 인천교구 신부)가 12월19일 오전 11시30분 전씨의 자택이 있는 연희동 골목길 입구에서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국민 길거리 홍보전´의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연다는 예고기사였다. 故박명규 기장의 부인이자 KAL가족회 회장인 차옥정씨는 ´대국민 홍보전´을 준비하게 된 취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고 한다. "다양하면서도 입체적인 방식의 홍보전을 펼치면서 서명운동과 모금운동을 병행해, 진상규명과 의혹해소를 염원하고 촉구하는 국민여론을 조성해 나갈 것이다. 서울시내 중심가에서 합법적 방식으로 지속적인 홍보전을 펼쳐나가되 필요할 경우에는 안기부의 후신인 국정원과 KAL 청사는 물론이고 정형근, 최병렬 의원 등 이 사건과 관련된 정치인들의 자택이나 사무실 앞에서 기습적인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여론을 환기시키는 충격요법도 활용할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따라서 김현희와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으면서 진상규명의 발목을 잡았던 ´남자들´은 당분간 꿈자리가 어수선해질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실제로 KAL가족회 관계자들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KAL기 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주사파"라고 매도했던 정형근 의원만은 끝까지 쫓아가 책임을 묻는 한편 115명의 원혼의 이름으로 다음 총선에서 반드시 심판하겠다는 의지가 충만하다(상자기사 ´김현희와 남자들´ 참조)>고 보도하였다. 정지환씨는 <"MBC ´PD수첩´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 공중파 방송의 시사프로에서 잇따라 이 사건의 전말과 의혹을 용기있게 보도한 이후 적지 않은 국민들이 전두환 독재정권의 정보기관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 이 사건을 조작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을 하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고 썼다. <시민대책위의 한 실무자는 12월 19일 시위대가 "살인마 전두환은 잠적한 김현희 내놔라" "긴급수배 김현희, 현상금은 29만원" "정권초기 광주학살, 정권말기 KAL기학살" 등의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이 담긴 현수막과 피켓을 준비하는 한편 전두환과 정형근씨가 도망자 김현희씨를 감싸고도는 퍼포먼스도 연출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아래와 같은 엄청난 왜곡을 하였다. <예컨대 김현희가 ´북한 출신 공작원´이 분명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결정적 증거라며 안기부가 자신있게 공개했던 ´꽃을 든 소녀´ 사진도, 김현희의 아버지라고 발표했던 김원석의 직책인 앙골라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수산대표도, 김현희가 유럽에서 북한 공작원 아지트와 연락하기 위해 점자식으로 암호화했다는 전화번호도 거의 모두 가짜였음이 외국 정부와 언론의 추적에 의해 밝혀졌다> 안기부가 최초에 공개한 사진은 잘못 되었으나 그것을 계기로 사진찾기에 나선 일본언론에 의하여 2003년 현재 김현희가 꽃을 들고 있다가 찍힌 사진은 이미 확정된 사실이었다. 이 기자는 名文을 쓰려고 한다. < "큰 침묵의 바다를 건너왔다." 지난 11월 29일 열린 16주기 추모식에서 차옥정 가족회 회장이 했던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큰 침묵의 바다´ 건너편에서 ´큰 진실의 언덕´과 만날 수 있을까. 오는 12월 19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택이 있는 연희동 골목길에서 우리는 그 가능성의 일단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만난 것은 ´진실의 언덕´은 맞는데, 그 진실은 의혹제기자들과 오마이뉴스를 어둠의 바다에서 난파시켜버리는 진실이었다. "꿈자리가 어수선해질 각오를 해야 할" 사람은 그들이다. =================================================================== KAL유족들, 北에 11억5000만 달러 배상 요구해야 -팬암機 폭파 사건 때 리비아가 사망자 1인당 1000만 달러 배상. 일부 유족들이 김현희를 가짜로 몰아 북한정권의 책임을 면하게 해주려는 것은 장래의 보상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일종의 自害행위이다. 趙甲濟(조갑제닷컴) 1987년 11월29일 김정일의 지령을 받은 金勝一(김승일)-金賢姬(김현희)가 바그다드發 서울行 대한항공 858편 보잉 707機를 공중폭파시켜 115명을 죽게 한 사건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김현희가 생포되어 범행 일체를 자백함으로써 북한정권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방해하려 하였던 서울올림픽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서울올림픽에 소련과 공산권 국가들이 대거 참여한 것은 평화무드를 확산시켜 그 이듬해 東歐(동구) 공산권의 붕괴로 이어졌다. 미국은 북한정권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려 작년까지 제재를 계속하였다. 서울올림픽에 대응하여 북한이 주최한 1989년의 세계청년 축전은 약50억 달러의 낭비성 투자를 초래하여 북한경제가 망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이든 국가든 나쁜 마음을 먹으면 망한다는 교훈을 남긴 셈이다. 김현희는 자신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리은혜라는 假名(가명)의 일본인 납치자에 대하여 증언하였다. 일본경찰은 리은혜가 다구치 야에코라는 여성임을 밝혀냈다. 이것을 계기로 일본인 납치문제가 공식화되었다. 1990년 일본 政界(정계)의 실력자 가네마루가 김일성을 찾아가 만나 日北(일북)수교 회담이 시작되었으나 리은혜 납치 문제가 등장, 중단되었다. 김정일은 日北(일북)수교로 100억 달러 정도의 자금을 조달하려고 2002년 9월 訪北(방북)한 고이즈미 수상에게 다구치 야에코를 비롯한 일본인 납치자의 명단을 공개하고 생존자 5명을 돌려주었다. 그러나 일본의 언론과 여론이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日北수교는 커녕 對北(대북)경제제재로 발전하였다. 김정일은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으로 스스로 판 구덩이에 더욱 깊이 빠지고 있는 것이다. 1987년 이후 북한정권이 아웅산-대한항공 폭파 같은 대규모 테러를 하지 않고 있는 것도 김현희의 폭로 덕분이다. 이런 정치, 외교적인 영향 이외에도 이 사건은 많은 교훈과 쟁점을 남겼다. 1. 김현희가 들고 다녔던 두 개의 폭탄은 플라스틱 폭약(C-4 추정)이 든 라디오 폭탄과 PLX 성분(추정)의 액체 폭탄(양주병으로 위장)이었다. 이 두 개의 고성능 폭탄은 공항 검색대의 엑스레이 투시기로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2. 1988년 영국 로커비 상공에서 발생한 미국의 팬암 소속 보잉 747 폭파사건(270명 사망)에서도 약300g의 플라스틱 폭약(Semtex)이 든 라디오 폭탄이 사용되었다. 3. 김승일-김현희는 일본인 父女로 위장하였으나 현지 안기부 직원, 서울 안기부 본부, 그리고 일본정부의 신속한 정보협력에 의하여 북한공작원으로 확인되어 폭파조가 현지를 이탈하기 직전에 체포할 수 있었다. 특히 일본정부가 체포, 수사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 4. 유럽의 북한공작 거점이 노출되었다. 5. 미국 CIA가 유럽의 조직망을 활용하여 안기부의 수사를 지원하였다. 한국정부와 맨첨 수교한 동구의 헝가리도 협조적이었다. 6. 안기부의 수사는 미국 등 관련국의 도움과 김현희의 정확한 증언에 의하여 거의 완벽하게 이뤄졌다. 이 덕분에 북한정권과 남한좌익들의 의혹제기를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김현희를 살려주기로 결정한 것도 적절한 조치였음이 증명되었다. 7. 1998년 이후 좌파정권이 들어서면서 國情院의 성격이 변하고, 친북좌익들이 김정일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터무니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MBC KBS SBS가 이를 지원하였음에도 김현희가 잘 버티고 일반 국민들이 현혹되지 않았다. 8. 2008년에 부시 행정부가 北核 해결을 위하여 북한정권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해준 것은 좌파 정부와 언론이 이를 반대하는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 유가족들은 북한정권에 대하여 책임자 처벌, 사과, 보상을 요구하였어야 했다. 2003년부터 좌파정권의 응원하에 친북좌익들이 본격적으로 제기하였던 ´KAL기 폭파 사건 조작설´이 미국측에 ´해제반대´를 요구할 분위기를 말살시킨 면도 있다. 9. 리비아는 팬암기 폭파사건으로 국제봉쇄를 당하자 犯人을 영국으로 인도하고 유족들에게 27억 달러를 배상하였다. 미국은 이에 대한 보상으로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리비아를 빼주고 단절되었던 國交를 정상화하였다. 10. 따라서 한국정부와 유족들은 남북한 관계의 정상화 과정에서 북한측에 적어도 11억5000만 달러(사망자 1인당 1000만 달러)의 배상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일부 유족들이 김현희를 가짜로 몰아 북한정권의 책임을 면하게 해주려는 것은 장래의 보상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일종의 自害행위이다. [독립신문 http://www.independent.co.kr/2009.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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