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근 칼럼] ‘감사론’
△김동근 대표
누구에게, 무엇에게 감사해야 하는가. 감사는 인간의 감정이기 때문에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다.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에 감사할 일이 하나도 없을 수도 있고, 모든 것이 감사의 대상일 수도 있다.
감사하지 않으려고 마음먹으면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할 일이 없다. 심지어 보편적으로 가장 당연한 감사의 대상이 되는 부모님도 ‘누가 낳아달라고 했나? 자기들이 마음대로 낳았는데 내가 왜 감사해야 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감사하려고 마음먹으면 세상 모든 것이 감사하다. 집 앞에서 빵을 사 먹어도 ‘내가 오늘 빵 가게 사장님 덕분에, 농부 덕분에 맛있는 빵을 먹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다. 살아있어서 감사하고 아프지 않아서 감사하고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있어서 감사하기도 하다.
따라서 감사의 문제는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감사하지 않는 것 보다 감사하는 것이 개인의 삶에도, 사회 전체의 번영에도 이롭다는 것이다. (부당한 대우에 노예처럼 감사하고 예스맨 하라는 말이구나! 하는 사람은 없겠죠?)
덕담이나 하자고 쓰는 건 아니다. 누구에게, 무엇에게 감사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관점은 이념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리고 현재 정치적 쟁점을 이루는 주요이념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대부분 영역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흔히 “해묵은 이념논쟁을 떠나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하자!”라는 구호를 많이 들을 수 있는데 “저 공부 안 했습니다. 여러분!”과 같은 말이다. 지금 좌우 논쟁이 이가 먼저냐, 기가 먼저냐 하는 논쟁인가? 그렇지 않다. 최저임금, 미·중 양자택일, 노사분쟁 등 먹고사는 문제에 직결되는 문제들이다.
일례로 반미감정은 어떨까. 앞서 말한 감사의 관점에 의하면 미국에 감사해야 한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 자기들 이득을 위해 공산주의의 팽창을 막기 위해 남한에 지원하고, 6·25전쟁에 참전했는데, 왜 감사해야 하는가? 본인도 딱히 미국에 고마워하자고 빡빡 우길 생각은 없다. 미국은 철저히 자국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것 맞다.
그러나 소방관이 징계받기 싫어 출동해서 우리 집 불 꺼줬으면 그건 감사할 필요 없을까? 그리고 이타심과 개인 이득을 완벽하게 따로 구분할 수 있을까? 그 소방관도 징계받기 싫어 불 끄는 것과 동시에 순수한 마음에서 제발 무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했을 것이다. 미국도 자기들 이득 보자고 돕는 김에 자유주의가 이 땅에 세워져서 헐벗은 사람들 좀 잘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했을 것이다. 죽어도 감사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으나 웬만하면 감사하는 쪽이 좀 더 아름다운 세상으로 가는 방향이 아닐까? 세상에 자기 이득 완전히 배제하고 순수한 이타심 동기만이 감사해야 한다면 감사할 일이 얼마나 남을까? 미국의 참전과 원조도 같은 관점에서 해석하면 답이 나올 것이다.
비슷한 관점을 사회 모든 곳에 대입해보면 많은 것들이 달리 보일 것이다. 본인은 감사에 대한 관점을 재정립하는 것이 개인의 삶을 향상하고, 이념, 정치, 사회적 쟁점에서 서로에게 이로운 길을 찾는 하나의 기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 : 김동근/ 대한민국 청년대학생연합 대표
찾아가는 뉴스미디어 넘버원타임즈
[2018. 2. 27. www.No1times.com]
'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창호 칼럼] 동양의 평화를 꿈꾸던 의로운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0) | 2018.03.23 |
---|---|
[이창호 칼럼] 美 기독교계의 거목 빌리 그레이엄 목사 99세로 소천 (0) | 2018.03.19 |
[김동근 칼럼] 평양올림픽 자원봉사자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 (0) | 2018.02.05 |
[전학연 칼럼/하영철] 교육 문제는 교육 논리로 풀어야 한다 (0) | 2018.02.05 |
[김동근 칼럼] 진짜 이용당했니 (0) | 2018.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