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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옥선생서훈추진국민운동본부,

“6·25전쟁에서 전시국민 행동의 사표가 되신

 김재옥 선생께 무공훈장 추서하여

국민의 애국 안보의식을 고양하라!”

 

 

△‘김훈추’ 본부장 박정학 장군이 8일 전쟁기념관 기자회견에서 “6·25전쟁에서 전시국민 행동의 사표가 되신 김재옥 선생께 무공훈장 추서하여 국민의 애국 안보의식을 고양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촬영 이상천 리포터 @No1times

 

‘김재옥 선생 서훈추진 국민운동본부(이하 김훈추, 본부장 박정학)’는 8일 서울 용산구 용산동 1가에 소재한 전쟁기념관 정문 ‘6·25전쟁 50주년 기념조형물’ 앞에서 6.25 최초 승전인 ‘동락전투’ 승리의 결정적 역할을 한 김재옥 선생께 무공훈장 서훈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훈추’는 기자회견에서 “나라를 살리는 일에 군과 민간인의 구분이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 “6.25전쟁 당시 동락초등학교(충북 충주시 신니면) 교사였던 김재옥 선생님의 기지와 신속한 행동, 투철한 애국심으로 6.25 최초의 승전을 할 수 있었으므로 김재옥 선생님에게 무공훈장을 수여하는 것은 우리 정부와 국민이 해야 할 당연한 도리”라고 강조했다.

충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6월 20일 동락초등학교에 부임한 김재옥 선생은 혼자 학교를 지키던 1950년 7월 6일 정오경 엄청난 수의 인민군이 학교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국군들은 차를 타고 도망갔다.”고 안심시켜놓고 재빨리 뒷문으로 빠져나와 국군에게 알리려고 가섭산(迦葉山) 속을 몇 시간이나 헤맸으나 국군을 만나지 못하다가 오후 3시쯤 부용산 암자에서 피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옆으로 지나가는 국군을 만나 대대장 김종수 소령에게 자세한 적 상황을 제보했다.

김종수 대대장은 김재옥 선생님의 제보를 토대로 현장을 확인한 후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오후 5시 기습공격을 전개해 능력상 상대가 되지 않는 1개 소총대대가 장갑차와 포(砲)로 무장된 3,000여 명의 적 1개 연대를 몰살시키는 6.25 최초의 승전을 할 수 있었으며,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전 연대 장병을 일 계급 특진시키는 특전을 내렸다.

‘동락전투’로 불리는 이날 승전은 6.25 개전 후 공격에 의한 첫 승리로, 노획한 소련제 무기는 UN군이 참전하는 계기가 됐고, 국군과 UN군이 방어선을 형성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한반도 적화를 막을 수 있게 됐다는 게 당시 참전자와 전쟁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특히 당시 김종수 대대장은 1990년 “그런 분이 없었다면 전쟁의 결과는 반대가 돼 우리는 어려움에 부닥쳐 있을 것”이라며 매우 높게 평가를 한 바 있다.

역사학 박사이며 예비역 준장이기도 한 ‘김훈추’ 본부장 박정학 장군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서 “미국 국방성은 지난 6월 26일 6.25전쟁 때 포로가 된 딘 소장 구출에 공로가 컸던 기관사 고 김재현 씨에게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인 국방성 특별민간봉사상을 수여했는데 비해, ‘우리 정부는 한국전쟁사 2권(국방부, 1979)’에 그 공적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듯이 6.25전쟁 전체의 승패를 결정짓는 큰 공훈을 한 고 김재옥 여교사에게 아직도 국가가 서훈하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동락전투’ 당시 중화기중대장이었던 신용관 장군(참전 당시 중위, 그 후 준장 전역)은 참전 용사 현장 증언을 통하여 “62년 전 김재옥 선생님이 나라를 구한 것을 이 자리에서 내가 증언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영광”이라고 말하고, 잠시 전시의 다급했던 현장의 기억에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듯 눈시울을 붉히며 기억을 더듬어 가는 기색이 역력했으며 그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공개했다. 증언 후 신 장군은 “김재옥 선생님의 제보가 승전의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밝히면서 “김재옥 선생님에게 무공훈장을 드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역설했다.

‘김훈추’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애국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김재옥 선생께 무공훈장 바치기’ 범국민 서명을 추진해 오는 10월 1일 국군의 날까지 꼭 서훈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날 기자회견 후 8일 중 관련 기관에 접수할 ‘김재옥 선생 무공훈장 서훈 청원서’를 신청받은 청와대를 비롯한 국방부 등 5개 기관은 앞으로 어떤 방안을 제시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다음은 이날 ‘김훈추’에서 발표한 ‘김재옥 선생님께 훈장추서’ 청원 기자회견문 전문(全文)이다. 

 

 

‘김재옥 선생님께 훈장추서’ 청원 기자회견문

 

 

△김재옥 여교사 현충탑 및 행적비



나라 살리는 일에 군과 민간인의 구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에서는 ‘6.25 때 나라를 구한 공로자들에 대한 서훈에서 민간인은 제외시키고 군인들만 특진과 훈장을 받았습니다. 이를 바로잡아야 미래 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으며, 김재옥 호국영웅에게 훈장 추서하는 것이 그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6.25 최초의 승전인 동락 전투는 81mm 박격포 1문과 기관총 2정만 가진 300여명의 소총 대대인 7연대 2대대(대대장 김종수 소령)가 포병 1개 대대, 장갑차 중대, 사이카 부대 등으로 증강된 3,000명에 가까운 적 48연대 전투단을 몰살시킴으로써 적의 전진을 지연시켜 국군의 방어선 형성 시간을 벌었고, 노획한 소련제 무기를 UN에 보내 UN군 참전의 계기를 만든 전투였으므로 이 전투의 승리가 없었다면 북괴의 마수로부터 이 나라를 지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귀중한 전승은 당시 19세이던 김재옥 동락초등학교 선생님의 「순간적 기지로 적을 안심시키고 재빨리 뒷문으로 빠져나와 남쪽 산을 4시간 이상 헤매면서도 반드시 국군에 알려야 한다는 투철한 애국심으로 제때에 국군에게 ‘적 정보를 제보’ 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이 전투를 이끈 대대장 김종수 소령의 ‘그 분이 없었으면 우리나라는 적화되었을 것’이라는 증언 등 국방부 발행『한국전쟁사』2권과 『6.25전쟁 증언록』에 명확히 수록되어 있으며, 현재 동락초등학교에 김재옥 교사 기념관, 행적비와 충혼탑이 세워져 있는 것만으로도 그 공훈의 증거는 충분합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에서는 이 전투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이 포함된 당시 7연대 전 장병들에게 일 계급 특진, 연대 간부들에게 태극무공훈장 등의 서훈을 하면서도 정작 가장 큰 공로자인 민간인 김재옥 선생님께는 지금까지 훈장하나 수여하지 않았습니다.

그간에는 ‘6.25 관련 추서금지’ 방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작년에 국방부의 ‘6.25서훈누락자 추가서훈계획’이 공고되어 이미 16명이 추서되었으므로 6.25 전쟁에서 그들에게 못지않는 큰 역할을 했다는 증거가 명확한 김재옥 선생님께 그 공로에 맞는 훈장을 추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런 서훈을 통해 그분의 보국충혼을 기리는 것은 평상시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드높이고 전시 국민행동의 사표가 되어 미래의 우리나라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에 「김재옥 선생 서훈추진 국민운동본부」에서는 민간인에게는 흔치 않은 무공훈장을 김재옥 선생님께 추서하되, 올 국군의 날에 대통령께서 직접 친수해주시기를 정부에 청원하고, 이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국민 서명운동을 전개기로 했습니다.


서기 2012년 8월 8일

 

김재옥 선생 서훈추진 국민운동 본부

본부장 큰머슴 박정학 외 함께하는 많은 애국단체와 시민들

http://cafe.daum.net/kjo

참여단체 : 대한민국성우회, (사)한배달, (사)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사)한민족통일여성중앙협의회, (사)한국효도회, (사)한민족세계화본부 외다수 

 

 


 

촬영 이상천 리포터 @No1times

 

찾아가는 뉴스미디어 넘버원타임즈

 

[2012. 8. 8. www.No1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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