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대표
기자가 2002년 선거 이후 李會昌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04년 초여름이었다. 옥인동 집으로 찾아갔다. 月刊朝鮮과 인터뷰를 하자고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초여름의 山寺처럼 조용한 환경에서 修道僧처럼 응접실에 앉아 있었다. 일본 무사집단을 다룬 일본 소설을 읽고 있었다. 明治維新 시절에 신센구미라는 무사그룹은 망해가는 도쿠가와 막부를 끝까지 지켜내려고 했다.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고 主君에게 충성한 이들은 개혁파를 암살해갔다. 나중엔 이들도 전멸하는데 일본인들은 역사의 패배자들을 동정하는 습관에 따라 이 무사그룹을 드라마나 소설로 많이 다뤘다. 학생 때 권투를 한 李會昌씨가 武士 소설을 읽으면서 스스로 다짐하는 바가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바깥 출입을 하기가 신경이 쓰인다고도 했다.

그 몇달 후 기사와 관련해서 李會昌씨를 다시 만나 식사를 함께 했다. 그는 김대중씨를 경멸한다고 했다. 불출마 약속의 번복 등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2002년 大選 기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섭섭한 마음을 드러냈다. “김대중 씨는 군사쿠데타를 한 JP같은 사람하고도 손을 잡고 집권했는데 왜 우리 보수층은 제가 反美촛불 집회에 대해 조금 제스처를 쓰는 것을 그렇게 비판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당시 李會昌 후보의 행태를 비판했던 기자를 향해서 하는 말인 듯했다. 기자는 속으로 ‘좌파는 원래 거짓말쟁이들이니까 그런 수법이 통하지만 정직을 신념으로 하는 보수 세력은 거짓말을 하면 자기 부정이 되기 때문에 그런 쇼를 양해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李會昌씨는 그 뒤 안보 및 對北문제와 관련하여 몇 차례 연설을 했다. 작년에 북한이 核실험을 한 뒤엔 자위적 核무장론을 제기했다. 북한이 끝까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자위적 목적에서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하며 그런 움직임이 주변국가들을 자극하여 북한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키는 효과를 낼 것이란 요지였다. 한국의 정치인들 중 핵무장론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은 李會昌씨가 처음이었지만 언론은 이를 무시했다. 지난 5년간 李會昌씨와 측근들은 ‘무시당하고 있다’는 모멸감을 품었고 이것이 출마를 결단하는 한 동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난 연초 기자가 다시 이회창씨의 자택을 찾아갔다. 마침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제기했던 대통령 중임제 개헌안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글을 발표한 뒤였다. 기자는 올해는 중요한 시기이니 서울시청 광장이나 서울역 광장으로 나와서 애국운동을 지도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는 선명한 애국투쟁을 하고 있던 국민행동본부의 노선에 찬동한다면서도 ‘아직 이른 것 같다. 그러나 문제가 있을 때마다 나름대로 나의 의견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남북문제 걱정만 해

李會昌씨가 야외 대중연설을 하기로 수락한 것은 지난 2월이었다. 3월1일에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리는 국민대회에 연사로 나와 달라는 초청을 받아들였다. 그 뒤 주최측 내부에서 그의 출연을 반대하는 의견이 나와 ‘안 나와 주셨으면 좋겠다’는 통보를 받아야 했다. 한나라당 경선기간 중 李會昌씨는 중립을 지켰으나 朴槿惠씨 편은 아님이 분명했다. 그는 2002년 초에 탈당하여 김정일을 만나러 갔던 朴槿惠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다. 경선기간 중이던 지난 7월 李會昌씨는 姜在涉 한나라당 대표에게 공개편지를 보냈다. 박근혜씨가 집중적으로 이명박씨의 도덕성 문제를 거론하여 시작된 ‘도덕성 검증’이 결국은 본선에 나갈 후보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당이 의혹을 확인할 수단도 없으므로 당내 검증 청문회는 안하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편지에서 그는 정형근 의원이 주도하여 만든 신 對北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한나라당이 햇볕정책을 닮아가는데 정권교체의 당위성을 어떻게 국민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가라고 따졌다.

기자는 지난 8월18일 李會昌 전 총재를 다시 만났다. 한나라당 경선 투표일을 하루 앞둔 자리였다. 그는 제2차 평양회담에 한나라당과 경선 후보들이 너무 안이하게 대응한다고 걱정을 많이 했다.

“2000년 4월 총선 투표를 며칠 앞두고 소위 남북정상회담 발표가 있었는데 그때는 보수 유권자들의 반발로 해서 한나라당이 크게 이겼다. 그러나 막상 6·15회담이 이뤄지니 완전히 세상이 바뀌어 버리더라. 정말 조심해야 된다”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긴 李明博 후보가 李會昌 씨를 만난 것은 지난 10월8일이었다. 이 자리에서도 李會昌씨는 李후보에게 엄정한 對北정책을 주문했다고 한다. 李明博 후보는 李會昌씨에게 선거대책위의 상임고문 자리를 제의했고 李會昌씨는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런 이야기가 李會昌측에서 나오자 李明博 씨는 그런 제의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여기에 李會昌씨는 화가 많이 났다. 그가 출마를 결심한 것은 10월15일쯤으로 보여진다. 그는 혼자서 출마문제를 놓고 오래 고심했겠지만 측근들이나 가족과 상의하지는 않았다. 조직을 준비한 것 같지도 않다. 李明博 후보가 김정일과 노무현 정권을 상대로 용감하게 싸웠더라면 출마할 명분을 찾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李會昌씨는 10월24일에 서울시청 광장에서 있었던 NLL 死守대회에 처음으로 나와서 대중연설을 했다. 이 자리에 나가냐 마느냐로 몇 번 생각이 바뀌었다. 그런데 이 대중연설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언론이 ‘정치재개를 한 것이다, 출마할 것이다’라고 보도하고, 지지자들이 출마를 요구하는 시위를 시작한 것이다.

며칠 후 불교방송에서 이회창 이름을 넣고 여론조사를 했다. 결과는 지지율 14%, 며칠 있으니까 19%, MBC 조사에서는 드디어 26%까지 올라갔다. 이것이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높은 지지율에 자신도 놀랐을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자기 의지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상황에 끌려가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정통보수를 멀리하라!”

그 동안 李明博 씨는 뭘 하고 있었나. 한나라당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 좌파의 단일 후보와 가상대결을 붙이니 李 후보가 60대 20으로 이긴다는 조사가 나왔다. 朴槿惠씨도 경선 결과에 승복한다고 연설하니 朴씨의 지지표가 거의 대부분 이명박씨의 지지표와 합쳐져서 많을 때는 60%, 적을 때도 50%의 압도적 지지율이 석 달간 계속되었다. 李明博씨가 잘 나가던 때다.

잘 나갈 때 조심해야 된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 잘 나갈 때의 오만과 안도 속에서 실패의 씨앗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李明博 후보는 경선 직후 버시바우 미국 대사를 만나서 아주 의미 있는 이야기를 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친북좌파 대 보수우파의 대결이 될 것이다.”

기자도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반가운 말이라고 생각했다. 우파 인터넷 논객들도 환영하는 글을 많이 썼다. 그 며칠 후 李明博씨의 측근 참모를 만나 그 말 참 잘했다고 전하니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참모들이, 그 발언을 한 李明博씨에게 앞으로는 그런 이야기를 해선 안 된다고 건의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도 그 발언이 불리하게 나왔다는 것이었다. 지나고 보니 그때가 李明博씨의 운명을 결정할지 모르는 아주 중요한 전략적 선택을 한 시기이다. 원래 안보에 관심이 크지 않았던 李씨는 참모들이 말리니까 ‘선거 구도를 좌우 대결로 설정하지 않는다. 오로지 경제제일주의로 중도표를 잡고, 좌파와 전선을 형성하지 않으며 좌파가 싸움을 걸면 피한다. 따라서 평양회담에 대해서는 정면에서 맞받아치지 말고 회피하거나 영합하는 쪽으로 간다. 보수는 어차피 따라오게 되었으니 중도표만 잡으면 된다’ 는 전략적 선택을 한 것이다.

한국에서 이념은 안보이고 안보는 생존의 문제이다. 자신의 생존문제에 대해서 애써 무관심한 척하면서 인기에 영합하는 고상한 말들만 하는 조직이나 인간은 반드시 정신적으로 부패한다. 2007년 대통령 선거의 본질을 외면한 李明博 진영의 정신상태를 잘 보여준 것이 선거구호이다. “겨울 바다에서 고래를 잡자.” 오렌지족의 끼를 연상시키는 이 구호가 “공공의 적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겠다”는 李會昌의 안보-법치주의와 부딪치면 어떻게 될 것인가?

李明博의 눈과 귀: 좌파 참모들

좌경운동권 출신 참모들은 李 후보의 가장 강력한 지지세력인 정통보수 세력을 극우, 수구라고 몰면서 거리를 두려고 했다. 문제는 그 극우가 소수파가 아니라 全유권자의 30~35%나 된다는 점이었다. 이런 지지층과 李후보 사이를 이간질한 것이 참모진의 좌경적 성향인 셈이다. 그 사이로 李會昌 후보가 들어온 것이다. 역시 한반도의 가장 큰 선거 전략은 이념이다. 이념은 가치관이며 누가 적이고 누가 동지인가를 결정해준다. 이명박 후보에게 보수층을 멀리하라고 건의한 참모들이 근접해 있는 한 李 후보의 역전패는 가능한 시나리오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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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인코리아 http://www.allinkorea.net/2007.11.18]
Posted by no1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