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는 사람 등 뒤에 계속 소금 뿌릴텐가 인사 자제 얘기 또 나오면 내맘대로 할 것”
“안 그래도 초라한 뒷모습에다 좀 심하다 싶은데, 요새는 소금까지 날아오는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이 4일 연거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활동을 강력히 비판했다. 오전 국무회의에 이어 오후 경제 5단체장을 비롯해 주한 외국대사, 주한 외국기업인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경제계 신년 인사회’ 자리에서다.
노 대통령은 인수위를 향해 “소금을 더 뿌리지 않으면 나도 오늘로 이야기를 그만할 것이고, 앞으로 계속 소금 뿌리면 내가 깨지고 상처 입겠지만 계속 해 보자”고 별렀다. 노 대통령은 “나가는 사람 등 뒤에 구정물을 씌우고 소금을 뿌리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 내 희망”이라며 “아직 한국에 나가는 모습이 화려했던 대통령이 한 분도 계시지 않아 은근히 위안이 된다”고 비꼬았다.
국무회의에서 인수위 업무 보고와 관련된 몇몇 장관의 구두 보고를 들은 것이 발단이 됐다고 한다. 일부 장관이 인수위 업무 보고 양식에 ‘현 정부 5년의 정책 평가’와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 시행계획’이 함께 들어 있어 두 가지를 같이 보고하는 데 대한 곤혹스러움을 털어놨다는 것. 국무회의에는 전날 인수위에 업무 보고를 한 국정홍보처의 김창호 처장 등이 참석했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어떤 업무 보고 자리에서도 호통을 치고 얼굴을 붉히는 일은 없었다”며 “상황 인식이 잘못돼 있으니 진단과 비판도 잘못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딱 1주일 전인 지난해 12월 29일 노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만나 정권 인수인계에 적극 협조하기로 한 기조가 갈등 기류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서의 노 대통령의 주요 발언 요약.
“참여정부 국장들이 인수위에 불려가 호통을 당한다. 지난 5년간 정책에 대해 평가서를 내라고 하는데 그거 ‘반성문 써 오라’ 이 말 아니냐. 정말 힘없고 백 없고 새 정부 눈치만 살펴야 하는 국장들 데려다 놓고 호통 치고 반성문 쓰게 하고 그게 인수위냐. 아직은 노무현 정부다. 지시하고, 명령하고, ‘새 정부 정책을 지금부터 준비하라’ 이렇게 지시하는 것은 인수위 권한이 아니다. 떠나는 사람한테 꼭 반성문까지…. 나에게 쓰라고 하면 내가 알아서 쓸 텐데, 국장들한테 쓰라고 하고….
(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도 “인수위는 다음 정부의 정책을 준비하는 곳이지, 집행하고 지시하는 곳이 아니다”며 각 부처에 “인수위에 성실하게 협력하고 보고하되, 냉정하고 당당하게 임해야 한다. 무슨 죄를 지은 것처럼 임할 필요는 없다”고 역설했다.) ‘인사 자제해 달라’고 해서 ‘인사 자제하겠습니다’ 했는데도 좀 있으니까 또 그러더라. 오늘 이 이야기가 내 마지막 이야기다. 만일에 한 번 더 협조하라는, 인사 자제하라는 이야기가 한 번 더 나오면 그거는 사람 모욕 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해서 내 맘대로 할 거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 5년전 ‘노무현 인수위’▼ 盧당선인 각 부처 연일 질타…보고하던 간부 쫓겨나기도
노무현 대통령이 4일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각종 활동에 대해 “(나한테) 소금을 뿌린다” “(공무원들에게) 반성문 쓰라고 한다”고 맹비난하면서 5년 전 ‘노무현 인수위’의 활동 내용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인수위에 대한 각 부처 업무 보고가 시작된 직후인 2003년 1월 11일 직원 조회에 참석해 “정부에서 온 보고서를 보면 (내) 공약에 대해 심판자처럼 이것은 되고 이것은 안 되고 하는 식으로 결론을 먼저 제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적절치 않다”며 자신의 국정 철학에 대한 공직 사회의 이해 부족을 질타했다.
노 대통령은 14일 인수위 간사단 회의에서 “예산 구조도 재편성될 수 있으므로 예산이 없다고 일부 공무원이 (반대를) 얘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자신의 정책을 반대하려고 돈 핑계 대지 말라는 것이다. 같은 달 9일 노동부의 업무보고 때는 P 전문위원이 “정부가 노 당선자의 개혁 의지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보고장을 뛰쳐나와 정회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외교통상부의 업무보고 때는 한 외교부 간부의 발언에 “당신 친미파구먼… 나가 있어!”라며 보고 중인 간부를 쫓아낸 일도 있었다.
또 각 부처 공무원들이 보고서나 업무보고를 할 때 ‘법과 원칙에 따라’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인수위원들이 강하게 질책하곤 했다. ‘법과 원칙’이 노 당선자와 경쟁했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트레이드마크였다는 점을 의식한 것이다.이에 정치권에서는 노 당선자의 공직사회 길들이기가 논란이 됐다. 민주당 조순형 의원은 같은 달 15일 기자들과 만나 “노 당선자는 매일 인수위에 출근하기보다는 조용히 정국 구상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부 부처가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승헌 동아일보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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