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일변도 실망' 전교조 조합원 급감

“투쟁 일변도 실망” 2003년후 1만6100명 이탈

최창봉 동아일보 기자

정파간 세력 다툼… 권력 잡으면 독선으로 이어져


反 FTA 투쟁 - 대선활용 계획’ 되레 무관심만 불러 “시대흐름 못따라가… 초심 회복해야” 자성 목소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 수는 지난 한 해 동안 9200여 명 감소하는 등 2003년 이후 1만6100여 명이나 줄어들어 전교조가 퇴조기에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조합원이 급감한 것은 전교조의 폐쇄적 조직 운영과 투쟁 일변도의 활동 방식에 조합원들이 큰 불만을 갖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란 분석이다.

▽급감하는 조합원=2003년 9만3860명으로 정점에 달했던 전교조 조합원 수는 이후 2004년 9만1243명, 2005년 9만857명, 2006년에는 8만6918명으로 떨어졌고 지난해에는 7만7700명으로 줄었다. 9200여 명이 감소한 것은 전년도 전체 조합원의 10.5%에 해당하는 규모다. 숫자로만 보면 조합원 10명 중 1명이 탈퇴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전교조나 한국교원단체연합회 모두 회원을 늘리기 쉽지 않은 현실에선 엄청난 수다.

2003년 4월 전교조 교사의 차 심부름 논란 과정에서 충남 예산 보성초교 교장이 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전교조의 운동 방식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일면서 조합원 수가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전교조가 사립학교법 개정에 앞장서면서 사학들과 마찰을 빚은 데다 일선 교원 간에도 갈등이 일면서 조합원 수가 급감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폐쇄적 조직 운영=전교조를 내부적으로 움직이는 세력은 ‘정파’로 불리는 그룹들이다. 이들은 최고의결기구인 대의원대회에서 투쟁 방식 등 주요 현안이 결정되기까지 내부 의견을 정하고 활동 방향을 제시한다. 현재 전교조 내부에는 강경파로 분류되는 ‘교육노동운동의 전망을 찾는 사람들’(교찾사·PD계열)과 상대적으로 온건한 투쟁노선을 지향하는 ‘참교육실천연대’(참실련·NL계열)가 대립하고 있다. 대의원대회마다 두 정파 간의 표 대결이 벌어지고, 2년 단위의 위원장 선거에서도 정파가 내세우는 후보자가 경쟁한다.

이렇게 선출된 위원장은 자신이 속한 정파의 세력을 굳히기 위해 집행부의 의사결정 과정을 폐쇄적으로 운영하게 된다. 2006년 교원성과상여금 차등지급과 교원평가제 폐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등으로 사사건건 정부와 대립했던 장혜옥 전 위원장이 ‘교찾사’, 정치색을 드러내기보다 교육현장의 변화에 주력하고 있는 정진화 현 위원장이 ‘참실련’ 계열이다. 제2대 전교조 참교육실천위원장을 지냈던 이인규 한국교육연구소 소장 등 합법화 초기의 원로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소수가 전체를 움직이는 내부 관료주의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투쟁 일변도의 정책에 환멸”=강경 투쟁을 내세우며 정부와 대립하거나, 교육 분야와 동떨어진 주장을 하는 집행부의 정책도 다수 조합원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전교조는 1999년 합법화 이후 12차례의 연가(暇)투쟁을 강행했다. 연가투쟁은 집단으로 휴가를 감으로써 사실상 파업 효과를 얻는 투쟁 방식. 2000년 10월 사립학교법 개정 중단과 연금법 개정 저지를 위해 시작한 연가투쟁은 2003년 3월 세계무역기구(WTO) 교육시장 개방 반대, 2006년 11월 교원평가제 반대 등으로 이어졌다.

2001년 10월에는 자립형사립고와 교원성과상여금 반대, 2003년 6월에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폐기와 교원 지방직화 반대를 위해 한 달에 두 차례나 연가투쟁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사립학교법 재개정 반대를 위해 열린우리당 당사를 점거하는 강경책으로 물의를 빚었고, 같은 민주노총 산하 노조라는 이유로 이랜드 투쟁기금을 모금하려다 조합원의 반발에 부닥쳤다. 한 조합원은 “투쟁 일변도의 정책과 교육 현장에 직접 와 닿지 않는 정치적 구호들에 많은 조합원이 염증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신임교원 정치 무관심=1970, 80년대 운동권 경력을 가진 교원들은 정치적 성향이 강했지만 2000년 이후 임용되는 신세대 교원들이 정치 이슈에 무관심한 것도 전교조 세력 위축의 큰 원인이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도 ‘대선을 활용한 교육개혁’을 사업 목표로 내세웠으나 현장의 반응이 없을 정도로 조직의 열기가 식었다는 평가다. 정신적 우군(軍)이었던 참여정부가 끝나가고 실용과 원칙을 중시하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있어 전교조의 입지는 더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종전 같으면 사사건건 성명을 발표했지만 요즘은 이마저 뜸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전교조 변할까=전교조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교조 관계자는 “내부에서 빠르게 변하는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조합원들의 의견을 정책에 충실히 반영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교조는 조직혁신위원회를 신설해 조직 개편에 착수하는 등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전교조 집행부는 조합원 감소 대책의 일환으로 16일 전국 규모의 참교육실천대회를 열어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교육 정책을 논의하고, 조만간 조직개편안을 마련해 대의원대회에서 표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계에서는 교육 현장의 의견을 무시한 집행부의 정치투쟁적인 활동이 계속된다면 조합원들의 지지를 다시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 [최창봉 동아일보 기자 ceric@donga.com]


■ 민주화 열정서 이익단체로 변질된 10년
▼교육정책 ‘전교조 뜻대로’장관 임명에까지 영향력▼ DJ때 합법화… 盧정부 들어 정책라인 진출 교원평가제-차등성과급 등 ‘변화’ 좌절시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 교육 정책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다. 1987년 전국교사협의회를 모태로 1989년 5월 결성된 전교조는 불법단체로 오랜 투쟁을 거쳐 국민의 정부 2년째인 1999년 교원노조법이 통과되면서 합법화됐다. 전교조를 합법화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모두 전교조를 정권 탄생을 위한 지지 세력으로 삼으면서 끈끈한 관계를 맺어 왔다.

2000년 5월 열린 ‘전교조 결성 11주년 기념 전국교사대회’에는 문용린 당시 교육부 장관이 참석해 대통령의 축사를 전할 정도였다. 참여정부는 출범 전부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교육분과에 전교조 인사들을 포진시켜 대통령 공약 중 전교조와 코드가 맞는 부분을 적극 반영했다. 전교조 초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진경 씨가 대통령교육문화비서관으로 입성하는 등 대통령 직속 교육혁신위원회, 교육인적자원부 본부 등 곳곳에 전교조 인사들이 기용돼 교육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참여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 거론됐던 오명 건국대 총장이나 김우식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이 결국 기용되지 않은 것도 전교조의 반대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참여정부에서 전교조는 교육부를 카운트파트너로 생각하지 않았다”며 “전교조가 청와대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국회를 통해 압박하는 바람에 가로막힌 일들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국민의 정부 초기부터 시도된 교원평가제 도입을 지금까지 막은 것도 전교조의 힘이 컸다. 교원성과급 차등지급이나 연금법 개정, 교육과정 개정 등 교단의 변화를 꾀하는 사안마다 연가투쟁을 불사하며 적극 저지한 것. 전교조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기간 중 2000년 10월 교육재정 확보 촉구부터 2006년 11월 교원평가 및 차등성과급 반대까지 12번의 연가투쟁을 되풀이했다. 수업 결손에 대한 비판이 거셌지만 정부는 매번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전교조가 결성 초기 순수한 열정으로 교단 민주화 등으로 기여한 부분도 적지 않지만 세력이 커지면서 스스로 권력화했다는 비판이 많다. 국가보안법 폐지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등 교육과 무관한 정치적 사안에까지 사사건건 개입하면서 조합원은 물론 국민이 등을 돌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희균 동아일보 기자 foryou@donga.com]


관련기사
한나라당 경선과정에 대한 중간평가
민심과 당심 '따로 따로' 한나라당 전대

[올인코리아 http://www.allinkorea.net/2008.1.9]

Posted by no1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