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있어 大韓民國 건국 가능”

이인호 석좌교수,

'광화문 문화포럼'서 ... "역사 새로 쓰기 운동 펼쳐야"

2008년은 일제 36년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되고 대한민국을 건국한지 60년이 되는 건국 60주년이자 건군과 제헌헌법 제정 60주년이 되는 해다. 그럼에도 우리사회에서 건국기념일(1948. 8.15)이 광복절에 묻혀 기념식 한번 없이 지나는 가운데 건국 60주년을 맞아 학계, 종교계, 언론과 문화·예술계 등 인사들로 구성된 시민사회단체가 지난 해 11월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범 시민적 차원에서 기념사업을 추진, 현재 각 분과위별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건국 60주년 기념사업 준비위원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인호(여, 72세. 전 러시아 대사) KIST 석좌교수는 건국의 의미와 관련해 우리사회가 이를 등한시 한 것은 "1948년 건국은 이루어졌지만 남북으로 분단돼 '건국'이 퇴색될 수밖에 없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건국 60년이 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사료가 정치적 영향에 의해 실제적으로 조명되지 못한데 기인한결과"라고 밝혔다.

그런 한편으로 "학문적 진리와 역사적 사실과의 괴리감, 인간 심리의 속성이 복합적으로 작용됨으로써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의 건국은 그 자체가 무시되어 왔다"고 다양성이 가미되고 있음을 예로 들었다.

▲광화문 문화포럼. 13일 아침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포럼에서 이인호석좌교수는 한국근현대사를 중심으로좌파 수정주의시각에서 쓰여진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konas.net

이인호 교수는 13일 아침 광화문 문화포럼(회장 남시욱) 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주최한 조찬포럼에 초청강사로 나와 ‘건국 60주년의 의의와 과제' 주제의 아침공론마당에서 이렇게 말하고 건국을 전후로 한 우리 근현대사의 명암을 되돌아보게 했다.

특히 이 교수는 이 날 강연 말미에 '국민의 정부' 와 '참여정부' 10여년 동안은 사상전에서 일방적으로 패배한 기간이었다고 말하고 그러나 국민의 수준이 높아져 민주시민의식을 자각하고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했다며 이제는 앞으로 60년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역사와 관련해서는 "몇 달 전까지의 분위기만 해도 이승만 박사를 긍정적으로 보는 학자들은 국사학계에서 설자리가 없고 북한을 비판하면 무언의 압력이 오는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건국 당시의 역사를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며 "이제는 근현대사 100년을 넘나들면서 지난 60년과 앞으로 전개될 역사를 화해와 통합을 위해서도 위에서 보는 역사와 아래서 보는 역사를 절충해 누구나 수긍하는 역사가 되도록 이념에 관계없이 역사 새로 쓰기 운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고 화해와 통합의 역사를 강조했다.

▲ 이인호 석좌교수 ⓒkonas.net

이 교수는 자신이 유럽에서 연구하던 1972년 당시의 체험사실을 토로하며 "프랑스 혁명기념일에는 온 시내가 삼색기로 뒤덮이고 파리 세느 강변을 비롯한 골목골목의 작은 가게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거대한 축제의 장으로 변모해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며 "그러나 우리는 광복절과 3·1절, 개천절 등 국가기념일 등 공식행사도 형식적으로 그치고 축제는 고사하고 대통령은 광복절에도 조상을 욕하는 것이었다" 고 현상을 짚은 뒤 "그 밑에 깔린 근본은 남북간 이념대립이라는 진단이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이와 같은 이와 같은 현상은 "대한민국에 대한 해석이 자기나라 국민으로서 의 인식이 아니라 북한 입장에서 우리 역사를 보고 그게 온 국민에게 퍼져나간 결과로 그게 지난 10년 사이 전교조에서 교육한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나라' 로 교육되었기에 건국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고 전교조에 의한 교육 폐해현상을 꼬집었다.

그는 이어 "민족사적 맥락에서 볼 때 1910년 국본 잃었지만 이미 5년 전에 외교권을 빼앗김으로써 주권국의 권리를 상실했다. 1945년 광복은 우리 힘보다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이 일본을 패배시킴으로서 기회가 온 것이지 그게 독립국 탄생의 의미는 아니다" 말했다.

이 교수는 또 해방 전후를 중심으로 미소 양 강대국의 활약과 한국이 처한 상황을 돌아보면서 우리사회의 애국적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보면서 소련 맑스주의가 내세운 평등사회와 민족주의, 계급해방론에 매료돼 상당수의 지식인들이 공산주의의 실상을 알지도 못하면서 맑스주의자가 되었다고 당시 사회 상황을 언급했다.

바로 지식인들이 여기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요인도 스탈린 1인 숭배를 중심으로 한 철저한 정보통제에서 기인한 결과라 말하고 "이념자체가 러시아 민족주의의 도구였음에도 우리사회의 좌파지식인들은 여기에 함몰돼 자진해서 문인들도 월북했다"며 "그런 상황에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면서 건국이 이루어졌다" 며 해방 후 좌우의 갈등이 노정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김구 선생과 이승만 대통령의 공과에 대해 가감 없이 거론하고는 "이승만은 당시 세계정세를 꿰뚫어 보는 몇 안 되는 지도자로 강력한 민족주의자이자 미국을 비판하면서도 미국식 민주주의가 바람직하다고 판단한 탁견 있는 분이었다" 말하고 이에 반해 최근 밝혀진 김구 선생 녹취록 등을 언급하면서 "김구 선생은 애국자지만 국제정세에 대한 안목은 부족했다. 그로 인해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이 크다" 고 그의 언행을 비판했다.

이 교수는 "대한민국 건국은 태생부터 파괴자를 안고 출발했다"고 좌파사상과 좌익세력을 겨냥했다.


이로 인해 제주4·3사건과 여수순천 반란사건으로 이어졌으며 이런 가운데서도 나라가 만들어지고 존립했다는 것은 기적이라며 3선개헌 등 부정적 시각도 있지만 만약 당시 건국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미군정이 계속되다 미국이 손을 떼면 십중팔구는 공산주의에 흡수되었거나 또 다른 비극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건국의 의의에 큰 무게를 실었다.

이 교수는 끝으로 "해방 후 가장 비참한 나라가 이제는 세계가 우러러보는 존재가 되고 있지만 건국 60년이 되면서 굉장한 시련에 직면하고 있다"며 "중국, 인도, 브라질과 같은 국가가 엄청나게 다가온다. 그동안 인정받는데 주력했다면 이제부터는 선진국으로 우뚝 설 단계"라면서 "이럴 때 건국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고 국민이 힘을 합쳐야한다" 고 강조했다.


이 날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포럼에는 학계, 언론계 출신 원로 100여명이 참석해 건국 60주년의 의의와 앞으로의 과제를 되새겼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코나스넷 http://www.konas.net/2008.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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