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젊은 층과 학생계층 공략 전략 목표 세울 가능성 높다”
요컨대 북한 당국이 풀어놓은 외부 문물의 유입으로 인한 ‘가치(관념)문화’의 부분적 변동과, 경제적 곤란과 상대적 박탈감과 불안 등으로 인한 ‘물질문화’의 변동이 맞물리게 된 것 같습니다”.
북한 청소년들의 가치관 변화추이에 대한 질문을 하자 이인정(공주교대 강사, 북한학) 박사의 답변이 곧 이어졌다.
“북한을 탈출해 우리사회로 온 탈북자만도 1만2천여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단 한사람이라도 위장된 인원이 있다면 그만큼 우리의 안보에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북한학을 전공하고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기에 북한에서 발행된 각종 문헌과 자료를 연구하면서도 탈북자들과도 자주 접촉하고 있다는 이 박사는 우리사회 안보불감증을 우려하면서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지난 2004년「북한 새 세대의 가치지향 변화」를 중심으로 박사 학위논문을 받기도 한 이인정 박사는 북한 청소년들의 가치관 변화와 일탈현상을 사례를 들면서 설명했다.
이 박사와의 인터뷰는 지난 8월27일 향군 본부 회의실에서였다. 1시간 가량 이어진 이 날 인터뷰에서 이 박사는 자신을 지도한 이온죽 교수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내 비쳐 사제간의 정이 돈독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다음은 이인정 박사의 인터뷰 전문내용임. (Konas)
▲ 안녕하세요 박사님.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요?
== 반갑습니다. 작년에는 서울대학교 통일학 연구소에서 공동연구로 북한의 근로단체(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조선민주녀성동맹)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공주교육대학교, 한국교원대학교, 경인교육대학교에서 도덕교육론과 북한학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또 재학생과 졸업생 중심으로 중등교사 임용 관련 강의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 박사님은 북한학을 전공하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 = 북한학 관련 연구는 1995년경 부터 관심을 가졌으며, 지도교수이신 이온죽 교수의 선구자적인 일차자료 분석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1996년에는 세종연구소에서 백학순 박사, 이종석박사와 함께 조교로 참여하면서 탈북민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1997년 석사학위논문은 “남북한 사회통합을 위한 전통문화의 역할에 관한 연구”로서, 그 당시로서는 북한의 일차 자료 입수가 쉽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연구가 드문 편이었습니다.
▲ 요즘 학생들의 북한에 대한 생각과 박사님이 공부하던 당시의 북한에 대한 생각과의 차이가 있는지?
==1990년대 중후반에는 일차자료의 입수가 힘들었고, 대학생들보다는 기독교 등의 선교단체 등이 북한에 더 큰 관심을 보였던 특징이 있습니다. 이후 최근으로 오면서 남북공동선언문과 남북 교류 증진으로 인해 북한 사회 자체에 대한 사회 전반의 관심도가 높아진 특징을 보입니다. 다만, 통일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이나 주민들의 생활상에 대한 순수한 관심은 과거 세대에 비해 조금 감소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세대에 비하여 달라진 점은, 북한 사회에 대한 관심과 북한 당국자들에 대한 관심을 분리하여 이해하려는 태도가 증가한 듯 합니다.
▲ 북한은 우리에게 주적개념의 대상이자 미래사회에 함께 가야할 동반자이기도 한데요, 학문적 측면과 현실적 측면에서 진단을 하신다면?
== 정치, 정책, 안보적 측면의 북한 연구와, 사회나 문화적 측면의 북한 연구가 모두 균형 있게 발전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최근 들어 다소 진보적 이념이 주류를 이어 온 사례들이 발견되며, 북한에 대한 시민단체들 차원에서의 관심이 증가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안보적 측면과 미래 통일 사회에서의 통합적 번영과 관련된 북한 연구가 다소 위축된 감이 없지 않습니다.
안보적 측면에서의 북한 연구가 ‘수구’나 구태의연하다는 편견을 극복할 수 있도록 더욱 내실 있는 연구들이 진행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또한 단순히 북한사회만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들을 넘어서, 학제적이고 통일적인 차원에서 다양한 북한 연구 시도들이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할 듯합니다.
예컨대 통일대비 차원에서 교육과정의 비교 연구나, 다문화 교육적 차원의 남북한 통합 관련 연구, 평화교육을 비롯하여 다양한 새로운 개념들을 접목한 새로운 각도의 통합교육과 통일교육, 통일사회의 발전적 안보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과거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혁명1세대와 최근 사회변화과정에서 큰 차이점이 있을 수 있겠지요? 특히 요즘 북한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한 국가 정체성이나 자기 가치관 변화에도 차이점이 클 것으로 보는데요?
== 어느 나라에든지 전후세대들의 경우에는 가치 선호의 서열이 과거 세대들과는 차이를 보일 수 있습니다. 더욱이 한국의 경우 급속한 사회발전을 거치면서 세대 간의 차이나 갈등이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1980년대 말 이후 최근의 북한 사회는 그 변화의 폭과 강도가 더욱 강하며 급속히 이루어지게 되면서, 그 전의 세대들과 현 북한 청년들의 가치 특성이 더 큰 차이를 보일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김일성’에 대한 신뢰나 존경심은 세대를 초월하여 높게 상징화되어 있는 듯하나, ‘김정일’에 대한 입장은 구세대의 경우에도 상대적으로 그 권위가 낮게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북한의 새 세대들에게도 마찬가지이며, 따라서 혁명의 제 3, 4세대인 새 세대들에게는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지지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탈북민 인터뷰 등에서 확인된 바로는, 탈북자들에게 열려 있기만 하다면 미국이나 특히 일본 등지로 망명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舊 소련이나 북한 당국이 설치한 철로와 전신주는 금방 망가지되, 과거 일제 치하에서 일본이 건설한 철길과 전신주는 아직도 튼튼하다면서 칭찬을 한다고 합니다. 즉 북한 당국의 회상기학습 등의 교양시도와는 달리, 현 젊은 세대들의 미국과 일본에 대한 태도는 그다지 공격적이거나 배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러한 태도는 청년 대상 교양을 시도하는 [청년전위] 등의 일차자료에서도 확인되는데, 서구 제품에 대한 환상을 가지지 말라고 교양하는 내용이 증가한다는 데에서도, 서구나 일본, 남한에 대한 청년 세대들의 이미지가 과거와는 다른 우호적 측면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음을 입증한다고 생각합니다.
▲ 박사 학위논문도 ‘북한 새 세대의 가치지향 변화’를 중심으로 했는데, 설명 좀 해주시지요.
== 북한 새 세대들은 특별히 1990년대 중후반의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겪기 이전 시기에서부터 가치지향에 있어서 변화를 보인 것으로 확인됩니다. 북한의 [청년전위] 신문 기사 등에서는 1990년대 초에서부터 이미 ‘물질주의, 배금주의, 황금만능주의’적인 경제적 가치 특성, ‘개인리기주의, 도시 선호’ 등의 사회적 특성, ‘패싸움’ 등의 일탈적 특성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기사에 등장하는 ‘가치특성’에 대한 빈도분석에 따르면, 1980년대까지는 거의 발견된 적이 없던 ‘돈, 돈지갑, 사치품’ 등에 대한 언급이 1990년대 초에는 최고 빈도로 등장합니다.
또한 1980년대까지는 ‘나태, 안일’ 등과 같은 소극적 일탈의 언급이 높았던 것과 달리, 1990년대 초에는 ‘패싸움, 무리지어 몰려다님, 폭력’과 같은 적극적 일탈의 표현이 ‘돈’에 대한 빈도 다음으로 두 번째로 많은 언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가치지향의 변화 시점은 1990년대 중반의 경제적 위기 때문이라기보다는, 1980년대 말 이후 동구권의 붕괴와 1989년의 평양 축전 등으로부터 촉발된 외부적 변동과 문물 유입에 기인하는 부분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 1990년대 중후반을 거쳐 2000년대에는 기존의 이러한 1990년대 초의 일탈적 특성과 변동특성이 ‘서구 문화에 대한 환상, 과시형 결혼문화’ 등의 ‘사회문화’적 측면의 변화로 고착되어가는 특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 북한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가치변화가 어디에서 기인되며, 그 변화 양상과 앞으로의 변화추이는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요?
== 북한 사회는 동일한 리더십과 낮은 사회변동, 폐쇄적 체계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여타 국가에 비해 젊은이들의 가치 변화 가능성이 낮은 사회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1988년의 서울 올림픽에 대응하여 경쟁적으로 진행하였던 1989년의 평양축전 준비과정에서 매우 적극적 양식으로 서구적 문물에 대한 수용을 정부당국 차원에서 시도한 바 있었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당국의 의도와는 다른 청년 세대들의 관심 자극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동시에,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고립, 그리고 평양축전 등으로 가속화된 재정 위기와 에너지 수급 문제 등이 1990년대 초의 배급제 이완을 가져왔습니다. 요컨대 북한 당국이 풀어놓은 외부 문물의 유입으로 인한 ‘가치(관념)문화’의 부분적 변동과, 경제적 곤란과 상대적 박탈감과 불안 등으로 인한 ‘물질문화’의 변동이 맞물리게 된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시적으로 아노미적 가치 혼란이 증가하고 사회 범죄와 일탈행위가 증가하였던 것이 1990년대 초 시기입니다. 나아가 김일성의 사망과 연이은 3년간의 수해 및 식량구입을 위한 중국으로의 이탈과 정보의 유입은 총체적인 혼란을 초래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1998년 이후의 공식적인 ‘고난의 행군’ 종료 선언과 그 이후 2000년대에는 당국의 교양 강화 시도가 다시금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변화는 결국 ‘제도문화’의 측면에서 변동성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결국 1998년 사회주의 헌법에서의 사유재산 인정 구절이나, 7.1조치 등과 같은 경제적 측면의 제도적 변화가 발생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부분적으로나마 아래로부터의 변동이 당국의 ‘위로부터의 변동’을 촉발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가능성은 향후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때 미녀 응원단이 방문해 반향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이들이 김정일 비하 현수막을 보고 태도를 일변한 적도 있습니다. 북한 체제에 대한 측면과 개인 가치관 측면에서 어떤 상관관계나 차이점이 있을까요?
== 사람의 인격과 자아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개념은 ‘통합성’입니다. 이러한 통합성을 구성하는 데에는 가족, 종교와 같은 집단이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만, 소속 지역(고향)이나 국가와 같은 거시적 집단도 중요한 한 개인의 인격적 통합성을 구성합니다. 따라서 인지적으로는 외부의 정보나 혹은 비난이 이해가 간다 하더라도, 정서적인 선호와 애착의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자신에게 중요한 집단에 대하여 공격적 혹은 방어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또한 문화 지체 이론에서처럼, 물질적 측면에 대한 수용은 비교적 큰 저항 없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나, 가치 혹은 제도와 같은 비물질적 측면은 그 수용 속도가 더딜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오랜 동안 받아 왔던 사상 교육은, 우리로 말하면 어린 시절부터의 밥상머리 교육이나 부모의 정치적 선호, 가족과 종교 차원에서 주입되고 형성되어 온 가치관이 한 개인에게 중요한 제한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북한 청소년들이 황금만능 풍조나 외제물건 선호 현상이 나타난다는데 당연한 처사이기도 하겠지만 사회주의 국가에서 가능할까요?
== 오랜 동안 동구 사회주의 국가나 舊 소련에서는 이러한 특성이 매우 흔하게 나타났습니다. 동서독 교류에 있어서도 서독의 시트콤이나 오락프로그램 등이 동독 지역에 수입되어 보급되면서, 잠재적으로 의도하지 않은 가치 변화를 촉발한 적이 있습니다. 즉, 시트콤에 등장하는 고가의 가구나 세트장, 오락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화려한 옷차림 등에 대한 선망이 특히 변화에 민감한 청년 세대들에게 강하게 형성될 수 있습니다. 또한 동구와 소련 모두에서 물질만능주의는 ‘관료부패’나 ‘뇌물’, ‘공공기물의 사적 절취’ 등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발생해 왔습니다. 북한 역시 발생 시기는 늦을지언정 매우 유사한 방향으로, 그러나 상대적으로 더욱 급속하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 북한 젊은이들과 우리 젊은이들과의 단순 비교라고 할까요? 우리 젊은이들도 국가에 대한 어떤 자기희생적 개념보다 개인주의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데요, 어떻게 비교를 할 수 있을 까요?
== 다양하게 직업적 측면에서도 이런 특성은 일차자료 등에서 자주 지적되고 등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대학생들은 모두 국가의 비용부담을 통하여 엄격히 선별되어 공부하는 계층이며, 미래의 당원이 될 핵심 계층에 들어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대학을 졸업한 이후 ‘평양’이기만 하면 직업의 종류에 대하여서는 상관이 없다라는 ‘도시선호’, 외국에 대한 선망, ‘먹을알 있는’ 직업 즉 외화벌이나 외국 관련 기업 취업을 강력히 희망합니다. 이러한 특성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중시하는 전체주의적 직업관에서, 이기주의적 직업관으로의 변화라고 할 수 있는 특성입니다.
▲ 많이 길어졌습니다. 통일은 분단된 우리에게 가장 큰 시대적 소명인데 분단 극복을 위해 젊은이들이 지녀야 할 가치관이나 자세에 대해서는?
== 사실 북한 당국은 몇 가지 전략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1990년대의 위기를 겪으면서 북한은 ‘산업사회’의 단계의 완성을 포기하고 곧장 ‘정보화’ 사회에로 이행하여 국가발전을 꾀한다는 전략을 취하였습니다. 산업사회단계를 발전시키고 완성하기 위해서는 외부적인 투자와 인적교류가 불가피하되, 정보화 관련 산업은 핵심 인력들에 대한 집중 투자와 관리로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러한 부문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았습니다.
또한, 정상적인 경쟁의 구도로는 남한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핵을 비롯한 군사적 투자를 통하여 대외적, 대내적 입지를 강화하고자 했습니다. 나아가 대남전략에 있어서도 경쟁이나 단순교류를 통한 방식이 아니라, 보수화되어 가고 고령화되어 가는 남한 내부의 특성을 염두에 두는 가운데, 남한의 젊은 층이나 학생계층을 공략하여 전략적 목표를 세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향후 대북 관련 교육이나 통일 교육에 있어서는, ‘미래’적 측면의 관점 뿐 아니라, ‘안보’적 측면의 교육 내용의 강화도 균형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노노데모’에도 관여하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 노노데모에 가입하였던 이유는 우선 이세진 학생의 일인시위를 전해 듣고 감동을 받았던 부분이 가장 컸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요인으로는 첫째, 한 나라의 최소 수혜자는 그 국가 전체의 발전과 번영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계층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서민층과 취업희망 계층들에게 가장 낙관적인 미래는, 다름 아닌 국가 발전에서 구상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혼란과 대외신인도 저하, 경제적 위기를 촉발할 위험이 있는 폭력 시위의 빈도와 양상이 높아지는 것은, 우리의 서민계층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는, 사범대를 졸업하고 교육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교우관계를 통한 우정과 학업에 대한 열정이 가장 중요할 시기인 학생 계층이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을 보고 근심이 컸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전교조가 지니고 있던 장점도 있었겠지만, 현 시점에서는 방어 능력이나 충분한 판단력, 사실판단에 있어서 진위를 판명하기 어려운 영역에까지 학생 계층이 내몰려지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고민 가운데, 과격 불법 촛불시위를 반대하는 노노데모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네, 감사합니다.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코나스넷 http://www.konas.net/2008.9.3]
'파란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병호 `우파적 사고가 성공을 부른다´ (0) | 2009.04.24 |
---|---|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 ‘나라 위해 싸우다 죽는 것이 가장 멋있는 죽음’ (0) | 2009.01.19 |
<인터뷰> 이수구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장 (0) | 2008.07.29 |
⊙인터뷰⊙ 정순란 지구촌기독외국인학교 이사장 (0) | 2008.07.28 |
세대를 뛰어넘는 국악 열풍의 현장을 찾아 (0) | 2008.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