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 여행지 소개 -4편-




사릉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 산 65-1)




경기도 남양주 진건읍에 위치한 사릉(思陵)은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능으로 단릉식이다. 처음에는 단종의 누이인 경혜공주가 출가한 해주 정씨 묘역이었던 현 위치에 민간 신분의 묘로 조성되었다.

그 후 중종 때 대군 부인의 예로 복위되고, 숙종 24년(1698년)에 노산군이 단종대왕으로 복위되자 부인도 정순왕후로 복위되면서 왕후의 능으로 추봉되었다. 그래서 다른 능에 비해 능침의 규모가 매우 작고 단출하면서도 간소하다.

사릉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이 설치되지 않았으며, 봉분 앞에 상석 1좌, 상석 양측에 망주석 1쌍을 세웠다. 봉분 주위에는 석양ㆍ석호 각 한 쌍이 배치되어 있고 그 바깥쪽으로 3면의 곡장이 둘러져 있으며 그 아랫단에는 문석인과 석마 각 한 쌍과 장명등이 있다. 평생 단종을 생각하며 일생을 보냈다 하여 능호를 사릉(思陵)이라고 붙였다.



홍ㆍ유릉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141-1번지)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위치한 홍ㆍ유릉은 고종과 비 명성황후 및 순종과 비 순명효황후ㆍ계비 순정효황후 세 사람을 합장한 무덤을 말한다.

홍릉은 고종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황제릉의 양식을 따라 명나라 태조의 효릉(孝陵)을 본떠 조성되었다. 꽃무늬를 새긴 12면의 병풍석으로 봉분을 둘렀으며, 봉분 밖으로 역시 꽃무늬를 새긴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하였다.

유릉은 조선시대의 마지막 왕릉으로 하나의 봉분에 세 명을 합장한 유일한 동봉삼실릉(同封三室陵)이다. 홍릉처럼 황제릉 양식으로 조성되어 있지만 홍릉에 비해 능역 규모가 약간 작은 편이다. 봉분을 감싼 병풍석과 난간석에는 꽃무늬가 새겨졌으며, 혼유석ㆍ망주석ㆍ사각 장명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으나 석양과 석호는 없다.



흥선대원군묘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창현리 산 22-2)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에 위치한 흥선대원군묘는 영조의 5대손이며 26대 임금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무덤이다.

흥선대원군이 1898년(광무 2년)에 죽자 처음에는 고양군 공덕리에 묘를 조성하였으나 1906년 파주군 대덕리로 이장되었고 1966년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겨졌다.

창현리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흥선대원군묘는 양지바른 산 중턱에 2단으로 나뉘어 있으며 봉분을 따라 기와를 얹은 나즈막한 돌담이 둘러져 있다. 상단에는 낮은 호석이 둘러져 있는 비교적 아담한 규모의 원형 봉분이 있고 그 앞에 상석이 놓였다. 봉분 옆에는 좌우 1쌍인 석양과 석호가 2기씩 각각 서 있다. 하단에는 중앙의 장명등을 중심으로 좌우 1쌍인 망주석ㆍ문석인ㆍ석마가 2기씩 각각 세워져 있다. 그런데 묘역 안에서 신도비(神道碑)나 봉분 앞뒤로 세우는 묘비, 묘갈(墓碣) 등의 비석을 찾을 수 없는 것이 특이하다.



광릉
(경기도 남양주시 진전읍 부평리 산 100-1)




경기도 남양주시 진전읍에 위치한 광릉은 세조와 비 정희왕후의 무덤이다. 조선 왕릉 최초로 같은 산줄기에 좌우 언덕을 달리하여 왕과 왕비를 각각 따로 봉안한 동원이강(同原異岡) 형식을 취하였고 두 능의 중간지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세웠다. 좌측 능선의 봉분이 세조의 능이며 오른쪽의 봉분이 정희왕후의 능이다.

광릉은 세조의 유언에 따라 봉분 내부에 돌방을 만들지 않고 회격으로 처리하였으며 무덤 둘레에 병풍석을 세우지 않고, 12지신상은 난간석에 새겼다. 능 주위에는 문ㆍ무인석ㆍ상석ㆍ망주석ㆍ석호ㆍ석양 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능역 아래쪽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참도는 생략되는 등 검소한 상설제도는 이후 왕릉 조성에 모범이 되었다. 일부 풍수가들은 세조의 광릉 자리가 좋아 조선 500여 년을 세조의 후손들이 통치하였다고도 한다.



[코나스플러스 2009.12.28]



Posted by no1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