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 여행지 소개 -5편-




현ㆍ인릉
(서울시 서초구 헌인릉길 42)


서초구 헌인릉길에 위치한 헌릉은 태종과 원비 원경왕후의 봉분이 조영된 조선시대 쌍릉의 대표적인 능제이다. 능 앞 석물들은 망주석만 빼고 모두 두 쌍씩 배치되었는데, 이는 고려 왕조의 현릉(玄陵)과 정릉(正陵) 제도를 기본으로 한 것이며 조선시대에서는 유일한 두 쌍 배치 방법이다.

내곡동에 위치한 인릉은 순조와 비 순원왕후의 합장릉인데. 혼유석을 하나만 설치하여 단릉처럼 보인다. 봉분에는 병풍석이 없고 난간석만을 둘렀으며, 장명등은 조선 초기의 팔각등 양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문ㆍ무석인은 생기있는 표정과 이목구비의 표현 등이 매우 사실적이어서 조선 후기의 석물조각의 특색을 잘 보여주고 있다.



융ㆍ건릉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산 1-1)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위치한 융릉은 장헌세자와 비 혜경궁 홍씨의 합장릉이고 건릉은 정조와 효의왕후의 합장릉이다.

융릉은 세자의 묘인 원의 형식에 연꽃이 새겨진 병풍석을 설치하고, 상ㆍ하계 공간으로 나누어 왕릉처럼 조영하였다. 상계에는 능침ㆍ혼유석ㆍ망주석이 배치되어 있으며, 하계에는 문ㆍ무인석ㆍ석마가 배치되어 있다. 정자각과 능침이 일직선상의 축을 이루지 않으며, 홍살문 오른쪽에 작은 연못을 둔 특이한 공간 구성을 보이는데, 이는 모두 풍수적 논리에 의해 조영되었다고 한다.

건릉은 병풍석이 없고 난간석을 두른 차이를 제외하고는 거의 융릉의 상설과 흡사하다. 8각 장명등도 융릉과 같다. 문ㆍ무석인의 조각은 매우 사실적이며, 무석인은 금관조복을 입고 있다. 19세기 왕릉 석물제도의 새로운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융릉과 건릉은 정조 때의 문운이 융성하던 기운과 양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영릉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산 83-1)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위치한 영릉은 세종과 정비 소헌왕후 및 그 동쪽으로 효종과 정비 인선왕후의 묘를 말한다.

세종과 정비 소헌왕후를 모신 능은 조선시대 최초의 합장릉이다. 1469년 여주로 이장하면서 병풍석과 석실제도를 폐지하고 회격으로 하는 조선 전기 능제의 기본을 이루었다. 능의 석물은 난간석에서 영저(靈杵)ㆍ영탁(靈鐸)ㆍ지초문양(芝草紋樣)을 배제하고 구름 문양과 십이지신상만 조각해 조선 왕릉 난간석의 기본을 확정하였다.

효종과 정비 인선왕후의 능은 특이하게도 왕릉과 왕비릉이 상하로 조영된 조선 최초의 동원상하릉이다. 왕릉과 왕비릉 모두 난간석만을 둘렀으며 왕릉의 봉분 주위로는 곡담이 설치되어 있으나 왕비의 능에는 곡담이 없어 두 능이 한 영역 안에 있음을 드러내 주고 있다.



장릉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위치한 장릉은 단종의 묘로 단릉이다.

1457년(세조 3) 사약을 받고 숨을 거둔 뒤 시신은 영월 동강에 버려졌으나 영월 호장이 거두어 인근 산기슭에 암매장하였다.

그로부터 59년이 지난 1516년(중종 11) 여러 사람의 증언으로 묘를 찾아 12월 15일 봉분을 갖추게 되었다. 그 뒤 1580년(선조 13) 상석ㆍ표석ㆍ장명등ㆍ망주석을 세웠는데 추봉된 정릉과 경릉의 예에 따라 난간석과 병풍석ㆍ무석인은 생략되었고, 석물 역시 후대에 만들어져서 왜소하면서도 간단하다. 장명등은 사각옥형(四角屋形)이다.

1698년(숙종 24) 신위를 종묘에 모심과 동시에 이곳의 능호를 장릉이라 했다. 장릉의 능침에서 바라보는 첩첩의 전경은 아름답고 장엄하다. 능역 안에 단종에게 충절을 다한 신하들을 배향하는 배식단이 있다.



[코나스플러스 2010.1.11]



Posted by no1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