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제주군 교천읍 교래리의 65만평 드넓은 부지에 자리 잡은 KRA 제주경주마목장. 지난 2월 20일부터 시작된 KRA의 무료교배지원사업으로 우수씨수말의 혈통을 이어받으려는 민간목장의 암말들이 황제와의 합방(?)을 위해 줄을 서서 대기 중이다. 이성과 함께 보기에는 다소 민망한 광경이 펼쳐지는 교배장에 여성 한 명이 나타났다. 160cm가 될까 말까하는 작은 키에 새내기 대학생처럼 앳된 얼굴을 하고 말들의 신혼방을 천연덕스럽게 들락날락하는 이 당돌한 여자의 정체는 KRA 최고참 여성 수의사 정효훈(30).
그녀는 제주경주마목장에서 산과진료와 망아지진료를 담당하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산부인과와 소아과를 동시에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작은 체구의 여성이지만 일반인들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어렵고 끔찍한 수술도 담당하고 있다. 가장 어려운 일은 절태술이라 불리는 수술로 난산시에 산도에서 죽은 망아지를 줄톱으로 잘라서 빼내는 일이다. 끔찍하고 잔인해보이지만 어미말이라도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행해야 하는 수술이다. 남자도 하기 어려운 일들을 너끈하게 해내는 그녀의 배짱과 담력이 놀라웠다. 그녀는 어린 망아지들이 감염성 질환에 걸렸을 경우 조기 진단과 치료를 하면서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뒤를 봐주는 자상한 수의사이기도 하다.
최근까지도 말 수의사는 대표적인 금녀의 영역으로 남아있었다. 경주마의 몸무게는 500kg이 넘는데다 천성적으로 겁이 많고 잘 놀래서 진료하는 도중에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특히 말은 위험을 느끼면 본능적으로 발길질을 하는데, 뒷다리에 차이면 죽을 수도 있다. 이런 위험천만한 동물을 데리고 말 수의사들은 다리의 상처도 꿰매고, 목구멍으로 내시경도 집어넣고, 거세수술을 하거나 항문으로 팔뚝을 집어넣는다. 진료도중 돌발사태가 속출하기 때문에 말 수의사들은 항시 부상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여자라고 이런 위험에서 비켜날 수는 없는 법이다. “한 번은 직장검사 도중 말이 주저앉는 바람에 팔이 꺾여 인대가 늘어난 적이 있어요. 아파서 죽는 줄만 알았어요.” 다쳤을 때 그만두고 싶지 않았냐는 질문에 “선배 수의사들 중에는 갈비뼈가 부러지거나 내장이 파열된 분들도 있어요. 이 정도는 약과”라며 웃어넘겼다. 위험하고 힘든 만큼 이쪽 영역은 전통적으로 남성들의 몫이었고, 외국에서도 여성 말 수의사는 극히 드물다. 정효훈씨가 입사하기 전에도 여성 수의사가 한 명 들어왔지만 육중하고 사나운 경주마들을 감당하지 못해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 하지만 정효훈씨는 이를 악물고 햇수로 육 년을 버텼고, 그녀의 뒤를 이어 후배 여성 수의사들이 네 명이나 들어왔다.
여성 수의사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경주마의 육중한 체구가 아니라 사람들의 조그만 편견이다. 정효훈 씨가 입사면접을 볼 때 면접관이 “말이 엄청나게 크고 무거운 동물인데 여자로서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당돌하게도 “나는 여자가 아니라 수의사다. 모든 일은 힘이 아니라 요령으로 하는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입사 후에도 여성수의사에 대한 편견은 계속 됐다. 사람들은 체구도 조그맣고 얼굴도 어린아이처럼 생긴 여자를 수의사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 번은 진료소를 찾아온 조교사가 멀쩡하게 진료복을 입고 앉아 있는 그녀를 본체만체 하고 “수의사는 어디 갔느냐”고 물었다. 옆에 앉아 있던 마사회 직원이 어이가 없어 “수의사 여기 계시지 않느냐”고 말했지만 조교사는 신참 여자수의사에게 맡기는 게 영 탐탁지 않은 눈치였다. 그녀는 자존심이 상해 눈물이 쏟아지는 걸 억지로 참으면서 열심히 진료해줬다. 그와 비슷한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났지만 그녀는 꿋꿋이 진료를 계속했고 이제는 그 어떤 남자 수의사들보다도 마필 관계자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고 있다. 그녀와 함께 입사했던 동료수의사는 “말 다리도 번쩍번쩍 들고 술도 잘 마시는 여장부”라며 “수의사로서 능력도 뛰어나고 남자들보다 세심한 편”이라고 그녀를 평가했다.
그녀는 독특한 직업만큼이나 인생역정이 다채롭다. 어렸을 때 캐나다로 건너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캐나다의 최고명문대인 Mcgill University에 입학했으나, IMF 사태를 맞아 눈물을 머금고 중퇴해야 했다. 교양학부만 마치고 귀국한 그녀는 국내 수의과대학에 편입해 다시 맹렬하게 학업에 정진했다. 개 피부학으로 석사학위를 따고 국가수의사고시에 전국 차석으로 합격한 그녀는 학교에 남아 학자의 길을 가고자 했으나 우연찮은 기회에 말 수의사라는 직업을 접하게 되어 2005년 마사회에 입사하게 된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소나 말 같은 큰 동물을 좋아했다”며 “말 수의사가 된 건 나의 운명”이라고 말했다.
결혼 3년차인데 아직 아이가 없다. 그녀는 “남편이 기흥에 근무하는 연구원인데 한달에 한번 볼까 말까한다”며 아쉬워했다. 휴일도 서로 다르고 명절에도 진료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끔은 그립다 못해 서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멀리 있을망정 언제나 자상하게 마음써주는 남편이 그녀는 언제나 고맙고 든든하다. 가정과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 땅의 수많은 직장여성들처럼 그녀도 인생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지만 정효훈씨는 말들의 곁을 떠나지 않을 작정이다. 그녀는 인터뷰 도중 “경주마는 다리가 부러져도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리는 습성이 있어서, 1등을 차지하고 병원에 실려 오는 경우가 많다”고 가슴 아파했다. 질주의 본능으로 골절의 아픔을 이겨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그녀는 고단한 말 수의사의 길을 꿋꿋이 가는 중이다.
(서울=뉴스와이어)
한국마사회 소개
KRA는 국가공익사업인 경마의 시행을 통하여 국민에게 건전한 여가와 레저공간을 제공하며, 레저세,교육세 등으로 국가재정에 기여함은 물론 수익금의 사회 환원을 통하여 공익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경마는 1차산업에서 4차산업을 아우르는 복합산업으로 이들 산업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현재 1000여개 농가에서 2만여두의 말을 사육하고 있는 농업계에서는 KRA의 농축산지원에 의존하는 바가 매우 크다.
언론문의처 : 한국마사회 김원영 02-509-1294
출처 : 한국마사회
홈페이지 : http://www.kra.co.kr
[뉴스와이어 www.newswire.co.kr 2008.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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