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종 전우회를 아시나요
6·25전쟁 당시 `하루살이 소위' 기꺼이 지원
전쟁터에서 총알이 날아가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삐융~ 삐융~ 날아간다고도 한다. 하지만 사실은 쏘위~ 쏘위~ 하면서 날아간다. 실제 전투에서 초급장교 손실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나를 따르라!
소대원을 이끌고 최전방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소대장의 길. ‘죽음을 각오’하는 것을 넘어 ‘죽음을 예약’하고 가야 하는 길이 최전방 소대장의 길이다.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
모든 장비·물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것은 초급장교의 부족이었다. 서울을 적의 손아귀에 내놓고 악전고투하며 후퇴하는 절망적인 전황 속에서 초급장교의 손실이 클 수밖에 없었다.
낙동강 방어전투가 최고조에 달했던 1950년 8월 중순에는 초급장교의 60%가 희생됐다. 1개 중대에 1명의 소대장이 중대장을 겸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 생겼다. 전선의 각급부대에서는 소대장을 보충해 달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육군본부에 비상이 떨어졌다. 초급장교를 긴급 수혈하라는 것이었다. 육군사관학교 생도와 보병학교 간부후보생을 초전에 소총병으로 투입했다. 학교도 문을 닫아 버렸다. 그야말로 초급장교 양성이 완전 중단됐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안고 50년 8월 15일 육군종합학교가 탄생했다. 학생·교사·교수 등 각계각층의 유명 인사는 물론 병역 의무가 없는 30대 후반의 민간인까지 대거 지원했다.
‘하루살이 소모성 소위’ 별칭까지 붙은 소대장의 길이 죽음의 길이라는 것을 어찌 몰랐겠는가?
하지만 이들은 스스로 그 길을 택했다. 이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 개인의 안위만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라가 없으면 나도 있을 수 없고, 가족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육군종합학교는 약 1년 간에 걸쳐 7288명의 소위를 길러냈다. 그 후 53년 휴전이 되는 그 순간까지 전후방 각지 혈전의 현장에는 꼭 육군종합학교 출신 소대장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육군종합학교 특유의 전투정신과 돌격정신, 나라 사랑하는 정신으로 맨 앞장서 싸우면서 소대장의 본분을 다했다. 당연히 큰 희생이 뒤따랐다. 졸업생 절반에 가까운 1300여 명의 전사자와 2256명의 전상자, 이들의 희생은 사실상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육군종합학교 출신 간부 중 용전분투했던 상징적 인물이 김교수(32기) 대위다. 그는 당시 6사단 6중대장이었다. 중동부 전선 교암산 일대에서 중공군 2대대의 공격을 육탄으로 막아내다 장렬히 전사했다. 휴전 이후 태극무공훈장이 추서됐다. 육군종합학교 장교들이 받은 각종 훈장은 모두 3500여 개에 달한다.
육군종합학교 출신들은 대부분 위관급으로 전역했다. 하지만 소령급 이상도 2668명이며 그중에서 127명의 장군이 배출됐다. 2군사령관을 지낸 김홍환(9기) 장군은 4성 대장까지 올랐다.
이들의 위국헌신 군인정신은 사회에 나가서도 국가 재건을 위한 밑거름이 됐다. 황경로 전 포항제철 사장, 김기택 전 영남대 총장, 통일벼를 개발한 정근식 박사, 구자춘 전 내무부장관 등이 그 주역이다.
71년 3월 12일 육군회관에서 육군종합학교 전우회 창립 총회가 열렸다. 현역이 937명 남아 있고, 4645명이 사회에서 활동하는 상황에서 장태완(11기) 예비역 육군소장이 회장으로 뽑혔다.
육군종합학교 전우회는 전몰회원 실태조사, 회원전적 기념사업, 어려운 회원 취업 알선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충용탑 건립 사업은 육종회의 역사와 긍지를 상징하는 필생의 사업으로 추진됐다.
76년 세워진 충용탑은 서울 장충동 재향군인회 부지에 처음 건립됐다. 향군이 잠실로 옮기자 함께 갔다가 향군 재건축에 들어가면서 다시 국립이천호국원으로 이전했다. 충용탑 기단에는 육군종합학교 출신 전원의 명단을 기별로 새겨서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토록 했다.
지난 23일 300여 육군종합학교 전우들이 전쟁기념관에 다시 모였다. 2010년 정기총회를 열어 먼저 간 전우들의 명복을 빌고 살아남은 자들의 본분을 다짐했다. 충용탑 비문이 이들의 다짐을 대신한다.
“우리들은 조국의 간성으로 창군 이래 나라의 기초를 닦은 선배들의 충용에 감사드리고, 구국일념으로 반공전선에서 피흘려 제물이 되신 영령 앞에 이 탑을 세워 정성껏 위로하고 다시금 우리 모두 다짐하는 말, 오직 조국의 자유평화를 위해 생명을 바쳐 충성을 다하리라.”
<이정호 재향군인회 공보관 jungho511842@hanmail.net>
[코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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