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8. 15. 19:20
[특파원 칼럼]
8·15…日의 두얼굴
지난 6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공원. 원폭투하 59년째인 이른바 ‘원폭의 날’을 맞아 평화기념식이 열렸다. 원폭투하 시간인 오전 8시15분 평화의 종소리에 맞춰 참석자들은 묵념을 올렸다.
공원 한편의 ‘어린이상(像)’에도 인파가 몰렸다. 이 상은 두살 때 피폭된 뒤 10년 만에 후유증으로 사망한 소녀 사사키 사다코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종이학 1,000개 중 964개까지 접고 죽었다는 사사키는 일본내에서 고통받는 원폭피해자의 대변자로, 반전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9일에는 두번째 원폭이 투하된 나가사키에서도 평화기념식이 열렸다. 나가사키 중심부에 있는 폭심지(爆心地) 공원에서는 인간띠가 만들어졌다. 반전·반핵단체들이 원폭의 참상을 알리는 행사였다. 전쟁 반대와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큰 뜻’에 열도 전체가 경건함에 빠져 있던 사흘이다.
그러나 한꺼풀 벗겨보면 또 다른 이면도 있다. 이들 행사에는 일본, 일본인의 피해만 강조된 채 피해의 원인이었던 가해에 대한 논의는 거의 감지되지 않는다.
일본의 이런 이중성은 새삼스럽지 않다. 2차대전 막바지 일본 군부는 퇴각을 ‘전진’이라고 표현했다. 전쟁 뒤에는 패전(敗戰) 대신 ‘종전(終戰)’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실정을 호도하고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수사(修辭) 치고는 너무도 빤해 보인다. 말의 향연은 현재의 정치권도 별반 다를 게 없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원폭의 날 치사를 통해 “우리나라는 히로시마·나가사키의 비극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굳은 결의 아래 (전쟁 포기를 금지한) 평화헌법을 준수하고 비핵 3원칙을 견지해왔다. 앞으로도 입장을 바꾸지 않고 핵무기 폐절(●絶)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적극적인 개헌론자라는 사실은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다. 현실론을 앞세워 ‘자위대는 군대’라며 개헌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자민당 창당 50년이 되는 2005년까지 개헌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사람이 그다. 피해만 있고 가해는 없는 ‘당당함’은 일본이 말하는 종전기념일인 15일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야스쿠니 신사 대신 전몰자 묘원을 찾아 헌화했다. 도쿄 중심부 구단시다에 있는 무도관에서는 전몰자 추도식이 열렸고, 무도관 건너편에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는 각료와 국회의원이 줄줄이 찾아 2차대전 A급 전범의 유해 앞에 고개를 숙였다. 신사 입구에서는 우익단체들의 야스쿠니 대체시설 건립 반대 서명을 받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야스쿠니 대체시설을 건립하겠다는 약속은 요즘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다. 현재 일본 인구의 4분의 3은 전후 출생자다. 침략에 대한 반성의 공기는 점차 엷어지고 있고, 그에 반비례해 유사법제, 자위대의 해외파병, 무기수출 3원칙 등 그동안 굳게 닫혀 있던 군사·안보부문의 빗장이 풀리고 있다.
변호사이자 시인으로 일본근대문학관 이사장을 맡고 있는 나카무라 미노루(中村稔)는 일본의 이런 분위기를 빗대 “패전 뒤 59년의 역사에서 배운 게 아무 것도 없다”고 질타한다. 8·15를 맞아 일본이 정작 고개를 숙여야 할 대상은 A급 전범이 아니라 ‘일본의 전쟁’으로 희생한 이웃국가 피해자들이다.
일본의 압제로 피해를 보았던 희생자들은 한반도는 물론 중국, 동남아 국가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전쟁의 비참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면서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탈바꿈중인 일본의 이중성에 새삼 곤혹스러움을 느낀다.
〈박용채 특파원〉
[경향신문 2004.08.15]


Posted by no1tv